[책]의욕 앞선 '책세상 문고' 표절 충격

  • 입력 2001년 2월 16일 18시 46분


◇출판가◇

참신한 기획으로 지식인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책세상출판사의 ‘우리시대’ 문고 시리즈의 하나가 표절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시대’ 문고의 하나인 ‘나 아바타 그리고 가상세계’의 저자인 정기도씨(서울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가 여명숙씨(미국 스탠포드대 포스트닥터 과정)의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존재론과 그 심리철학적 함축’과 학술논문 ‘사이버 문화의 형이상학적 기초’의 상당 부분을 무단으로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씨도 ‘우리시대’ 시리즈 저자의 한 명이다.

출판사측은 최근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표절 사실을 확인한 뒤 즉각 여씨와 독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정씨의 책을 전량 회수, 폐기했다. 정씨는 “이같은 행동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학계의 표절 불감증이 얼마나 뿌리 깊은 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 시리즈는 지난해 봄 첫권이 나온 이후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젊은 연구자들을 과감하게 필자로 등용시켜 인문사회과학의 부흥을 꾀하겠다는 기획 의도 때문이었다. 1000권을 돌파하겠다는 출판사의 의욕도 출판계의 화제였다. 현재 30권이 나왔고, ‘한국의 정체성’은 인문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평균 판매부수가 5000부를 상회할 정도로 독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의욕이 큰 만큼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출판인은 “대부분의 필자들이 아직 학문적 성과가 영글지 않은 젊은 연구자들이다보니 내용이 미진한 경우가 종종 눈에 띄었다. 1000권을 내겠다는 의욕 자체가 내용의 부실 가능성을 이미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번 표절 사건도 그런 맥락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표절도 문제이지만 출판사의 기획이 좀더 신중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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