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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28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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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0대 실직 사례〓6년간 몸담았던 한 지방은행에서 이달 9일 퇴직한 전모씨(35). 합병 이야기로 은행 전체가 뒤숭숭했던 12월 초, 30대 대리와 과장급에 대해 ‘숙청’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은행 안에 나돌았고 결국 그도 명예퇴직 대상자에 올랐다.
“50대만 됐어도 새 직장 구하기를 포기하고 퇴직금을 어떻게든 굴려 그냥 살아갈 생각을 하겠어요. 하지만 전 지금 누구보다도 일하고 싶은 30대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두 딸에게 어떻게 ‘아빠가 실직자가 됐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전씨는 “모아둔 돈도 없는 우리 30대에게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곧 사회적 생명의 숨통이 끊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10월 한 인터넷 방송국에서 해고당한 박모씨(27)는 20대 실직자의 전형. 대학을 졸업한 뒤 올해 초 벤처 열풍을 타고 벤처기업에 뛰어들었지만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대기업 등 기존 회사 10여 곳에 원서를 냈지만 재취업에 실패했다. 지방대 출신인 박씨에게는 서류전형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았던 데다 통과하더라도 보통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넘기가 어려웠기 때문.
“다른 벤처기업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싶지만 요즘 벤처업계에서 일자리 구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뚫고 나가기보다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러다가 인생의 출발도 제대로 못해보고 ‘영원한 실직자’가 되는 것 아닌지 겁이 많이 납니다.”
▽원인과 문제점〓20, 30대 실업자의 증가는 경제사정이 급속히 악화된 올해 3·4분기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는 IMF 관리 체제 때 이미 장년층 퇴직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데다 벤처업계의 위기로 이곳에 종사하던 젊은 층이 대거 실업 상태로 내몰렸기 때문.
또 경기침체로 극히 경직된 노동시장도 문제. 정부는 정리해고 도입 당시 “해고가 자유로워지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커져 오히려 실업률이 낮아진다”고 장담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전 업종에 걸쳐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이직과 재취업의 가능성이 어느 연령보다도 높았던 20, 30대조차 한번 직장을 잃으면 재취업은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됐다.
통계상으로도 20, 30대 실업은 증가하고 있다. 노동부의 ‘11월 고용동향 분석’에 따르면 20, 30대 실업률은 10월 5.9%와 3.0%에서 11월 6.4%와 3.2%로 상승했다. 전체적으로도 1년 이상 장기실업자의 비율이 10월 15.7%에서 11월 16.6%로 높아져 ‘재취업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柳錫春)교수는 “왕성한 활동력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갖춘 20, 30대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층”이라며 “이들의 장기 실직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낭비”라고 지적했다.
<이완배·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