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알쏭달쏭한 시간관념… 문화권마다 이렇게 다를수가…

  • 입력 2000년 12월 1일 19시 59분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

로버트 레빈 지음 이상돈 옮김

308쪽 1만원 황금가지

“내가 어릴 때는 배(腹)가 시계였다. 이 시계는 저녁 먹으러 갈 시간을 알려주었다. 오늘날에는 해시계로 아직 시간이 되지 않으면 배가 고파도 밥을 먹을 수 없다.” (플라우투스, 로마시대 희곡 작가)

뉴기니아의 한 부족은 ‘보름달이 뜬 후 갯지렁이가 나타나면’ 파종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시간관념으로도 생활에 불편이 없었다. 반면 오늘날 문명인들은 계획을 세우고 초를 쪼개며 시간을 절약해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탁기, 청소기 등 수많은 가사도구가 등장했지만 주부들은 더 엄격한 위생기준을 적용하느라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한다. 동화 ‘모모’에 나오는 도둑들처럼 누군가가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일까?

원제 ‘시간의 지리학’이 암시하듯 이 책의 저자는 세계 31개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문화권마다의 상이한 시간관념을 기록하고 분석한다. ‘마냐나(내일)’ 가 일상어인 라틴 국가들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관리와 식사약속을 하며 겪은 일화들은 약방의 감초격.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세 가지 지표를 이용해 각국의 ‘생활 스피드 순위’를 서열화한 도표다. 보행자의 평균 속도, 우표를 사고 거스름돈을 요구했을 때 우체국의 일 처리 시간, 거리 시계의 정확도 등을 합산했다. 스위스 아일랜드 독일 일본 순으로 상위권에 올랐고, 멕시코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이 하위권을 기록했다. 동남아에 ‘빨리빨리’라는 자랑스런(?) 한국말을 전파한 한국은 18위에 머물러 통계의 정확성을 의심케 한다.

저자가 ‘느린 삶의 예찬’에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삶의 페이스가 빠른 곳의 사람들은 삶에 만족할 가능성도, 삶에 치어 불행에 빠질 가능성도 똑같이 높다는 것이다.

“최고의 삶의 템포란 시간과 시간 사이의 균형을 찾아 자신의 삶의 속도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그가 내린 결론이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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