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미팅에 큰 몫하는 당신의 '개인기'는 몇점?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9시 09분


“개인기 하나만 보여주시죠.”

얼마전 모 화재보험사 입사 최종면접장에서 이런 요청을 받은 조모씨(26·K대 경영4)는 황당했다. 이 회사를 택한 이유와 자신의 장점, 미래에 대한 비전 등 보여주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개인기라니?

◇취업-결혼에도 '큰 몫'

불어로 자기소개를 마치고 시험장을 나왔다. 순발력과 유머감각, 개인만의 능력을 보려는 면접관의 의도에 어긋난 건 아닌지 착잡했다. 결과는…불합격.

‘개인기’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의 기술’ ‘운동경기에서 개인의 기량’을 일컫는 사전적 의미는 퇴색했다. 지금은 개인이 짧은 시간에, 특히 웃음으로 좌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내가 몇 년 전 ∼를 했는데…”로 시작하는 ‘체험성 재담’을 비롯해 기발한 삼행시, 묵찌빠, 성대모사, 몸짓 따라하기, 연예인 모창 등 ‘유형화된 개인기’가 대표적. 자칫 웃기지도 않는 유머시리즈를 했다가는 썰렁한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대학생 정유나씨(21·이화여대 한국음악과2)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빨리 보내기도 개인기에 속한다”며 “여럿이 모인 자리라면 무언가 특기 하나정도는 보여주어야 하는 게 대세”라고 말했다.

술자리 회식자리 여흥문화에도 개인기는 빠지지 않는다. 벤처회사 직원인 신준환씨(27·몰포츠 이사)는 “‘노래 한 곡조’식의 단조로움은 사라지고 대신 독특한 개인기 보여주기가 필수 활력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며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모창이나 성대모사 정도는 일반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개인기의 확산은 연예인들의 뜻밖의 면모를 보여주는 TV프로그램 ‘서세원쇼(KBS 2TV)’의 ‘토크박스’코너에서 비롯됐다. 10대 취향으로 출발했지만 최근엔 이주일 한무 이용식 등 중장년층도 출연해 개인기를 보여준다.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KBS 2TV)’ ‘남희석의 색다른 밤(SBS TV)’ 등 어지간한 TV 오락연예프로그램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개인기 코너가 이제는 일반인들의 일상까지 파고들게 됐다.

◇개인기 좋아야 미팅 1순위

개인기 유행은 인기 있는 젊은이상도 바꾸어놓았다. 최근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에서 미혼여성 400명을 상대로 실시한 ‘미팅상대자 1순위는?’이라는 설문조사에서도 ‘개인기가 좋은 남자’가 60.3%를 차지해 ‘패션스타일’ ‘매너’ 등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고려대 심리학과 권정혜교수는 “개인기 득세는 학연 지연 등 ‘출신성분’을 앞세우기보다는 ‘개인브랜드’만으로 자신을 승부할 수 있다는 점이 배경에 깔려 있다”며 “개인기의 유행은 전문성을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과 궤를 같이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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