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상도(商道)/"義를 저버린 기업은 망한다"

  • 입력 2000년 11월 10일 18시 34분


우리시대의 입담꾼 최인호(55)의 신작은 태생이 절묘하다. ‘경제의 신철학’을 보여주겠다며 펜을 들자 IMF가 터졌다. 3년만에 퇴고해 책으로 묶었더니 굴지의 재벌기업 퇴출로 나라가 들썩인다. 사회병리 현상을 예리하게 내다보는 무라카미 류처럼 그도 ‘문학적 예언자’를 노리는가.

“우연이겠지요. 작품 구상은 10년전에 했습니다. 우연히 어느 컬럼을 읽다가 ‘우리나라에는 존경받는 상인이 없다’는 대목을 보게됐죠. 얼마뒤 우연히 ‘한국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19세기 조선 거상 임상옥(林尙沃)에 대한 한 쪽짜리 자료를 발견했어요. 거기에다 맨땅에서 대기업을 일으킨 재벌 1세들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결합시키면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이야기의 씨줄은 세계 굴지의 자동차 브랜드를 꿈꾸다 사고사한 기평그룹 총수 김기섭 회장의 야망, 날줄은 의주 지방의 보따리 장사로 출발해 중국 상인들을 굴복시켰고 훗날 재산을 사회에 돌려준 인삼왕 임상옥의 일대기다. 소설가인 ‘나’가 죽은 김회장의 유품에서 나온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란 글의 의미를 찾으면서 씨줄과 날줄이 얽히고 진정한 상인정신의 요체가 드러난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비즈니스란 이(利)만 추구하는게 아니라 의(義)를 추구해야 한다는 ‘상인의 도(道)’가 응축된 말이지요. 지금의 경제위기는 정도(正道)를 지키지 않고 사도(邪道)로 재물을 탐해서 벌어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경제난국을 푸는 열쇠는 무엇인가. 소설은 인삼무역을 해 번 돈으로 유곽여인을 구해주고 업계에서 파문당한 임상옥의 재기를 이끈 세 활구(活句)로 답한다.

“첫째, 죽을 사(死). 중국상인 굴복시키려고 자기 인삼을 태워버린 임상옥처럼, 버릴 기업은 빨리 죽이고, 스스로도 죽을 각오를 해야지요. 둘째, 솥 정(鼎). 권력 명예 재물을 독식하면 망하게되니 솥의 세 발처럼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이 셋째, 계영배(戒盈盃). 가득 채우면 술이 사라지고 8할만 채워야 마실수 있다는 전설의 잔처럼, 만족(滿足)이 아니라 자족(自足)을 배워야하는 거예요.”

‘별들의 고향’으로 70년대 ‘청년문화’를 선도했던 ‘옥니에 곱슬머리 최씨 청년’은 이제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어른으로 자신을 자리매김 하려는가.

“나의 본령은 도시적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들면서 점점 역사에 관심이 갔을 뿐입니다. 이번 작품은 ‘역사의 왕국’에서 시도한 역사 추적과, ‘길 없는 길’에서 시도한 내적탐구를 혼합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메시지보다 작품성에 주목해 주기 바랍니다.”

그의 바램과 달리 이 작품에도 문학적 새로움의 잣대를 대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직조해 독자를 몰입시키는 ‘최인호식 구성’의 탄탄함과 기운생동한 문체가 갖는 위력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분석을 방해하고 독자들의 감수성에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현란한 원색의 매력’(평론가 이동하,1983)은 여전히 거부하기 힘들다.

“이젠 역사에서도 벗어나려고 합니다. 난 리버럴리스트(liberalist)거든요. 사랑도 움직인다는데, 작가의 관심사도 다양져야 하지 않겠어요. 나이가 들어도 허명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깨어있도록 내 자신을 채근할 뿐입니다.”

그는 최근 오랜만에 중 단편소설 4편을 완성했다. 2002년에는 예수의 인간적 풍모를 탐구하기 위해 유럽기행을 떠날 계획이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벌써 흥분된다”며 설레이는 모습이 영원한 문학청년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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