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의 ‘혐의’는 9일 밤 11시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 롯데백화점 강남점 앞 네거리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했다는 것(도로교통법 위반). 당시 현장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김모 의경은 이씨의 차를 세운 뒤 6만원의 범칙금 통고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이씨는 “신호를 위반하지 않았다”며 강남경찰서에 이의신청을 냈고 이에 따라 즉결심판에 넘겨졌다.
즉심 법정에서 이씨와 김의경은 상반된 진술을 되풀이했고 물증은 없었다. 담당 판사는 “의경이 잘못 단속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이씨의 이의신청을 기각한 것. 이씨는 즉심 결과에 불복, 다시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이씨의 주장〓이씨는 “6만원을 내면 끝날텐데 왜 번거롭게 재판까지 받으려 하느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의 원칙과 시민의 권리가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이씨가 말하는 당시의 상황은 이렇다. “교차로에 진입하기 직전 내 차 앞에는 대형 버스가 있어 앞의 신호등이 안보였고 나는 좌회전 차선 끝에서 일단 정지했다. 버스가 직진해 교차로를 지나간 뒤 신호를 보니까 그때까지 직진 및 좌회전 동시 신호가 켜져 있었다. 바로 좌회전을 시작, 교차로 중앙으로 들어섰는데 신호가 바뀌었다. 그 때 중앙에 서 있던 김의경이 뒤돌아보더니 차를 세우고 신호위반 딱지를 뗐다.”
이씨는 “나는 20년 넘게 운전해왔다. 미국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교통법규는 철저히 지키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단속 경력이 1년 남짓한 의경이 잘못 보았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반박〓이 사건을 담당한 강남경찰서 교통과 이모 경장은 “김의경의 기록과 이씨 주장을 다 들어보았지만 이씨가 신호를 위반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경장의 주장. “사건 현장은 상습 정체지역으로 교통정리를 위해 의경이 항상 배치된다. 신호가 바뀌어도 계속 진행하려는 차들이 많기 때문에 신호를 보고 경찰이 다시 수(手)신호를 보내 차량 흐름을 통제하는 곳이다. 공사 현장 때문에 경찰이 나와 있는 것을 보지 못한 이씨가 틀림없이 신호를 위반했다. 김의경은 이씨의 차를 등지고 서 있다가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는 순간 수신호를 보내기 위해 돌아섰을 때 이씨의 차가 끼어들어 오는 것을 본 것이다.”
이경장은 “함께 있던 다른 의경도 같은 증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당시 현장에는 김의경 혼자 있었다”고 말했다.
▽A변호사의 의견〓“미국의 ‘교통법정’에서는 경찰관도 똑같은 당사자로 취급한다. 따라서 단속 권한이 있는 경찰관인지, 단속 경험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철저히 따진 뒤 단속의 신뢰도를 판단한다.”
이 사건은 물증은 없이 시민과 경찰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사건. 정식재판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과 판단을 E메일로 보내 주시면 판결 후 결과와 함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수형·이정은기자>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