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학술회의]제2회의/남북 화해시대의 한반도와 일본

  • 입력 2000년 10월 13일 19시 42분


▽북―일 수교교섭의 전망과 과제(서동만·徐東晩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북―일 교섭에서 주목할 것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 점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미국이 한국전쟁이후 반세기에 걸친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를 추진케 한 원동력이 됐고 불투명한 상태의 북―일 수교교섭에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한국 경제사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자금 지원능력이 가장 큰 국가가 일본이므로 그 역할이 주목된다.

다만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수교교섭 이전에 경제협력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으며 북―일 경제협력과 남북경제협력을 결합시키는데는 아직 소극적인 듯하다.

특히 최근 한일 관계에서 일본은 남한이 한일 자유무역지대 구상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북―일 경제협력을 이 구상과 연계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은 북―일수교가 남북관계 개선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남북경제협력을 위한 재원조달에도 북―일 수교에 따른 보상금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북한이 일본과 수교한다는 것은 북한체제의 장래변화, 즉 개혁 개방을 위해서는 불가결한 구조적인 조건임이 인식돼야 한다.

경제대국 일본과의 경제적 연계 없이는 북한이 자본주의 세계시장으로 편입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경제협력과 일본의 역할(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아오야마학원 교수)〓북한이 고립주의를 벗어나 국제무대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배경에는 경제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렸기 때문이다.

북한이 본격적인 경제재건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유엔의 각 개발기관 등의 공적지원이 필수적이다. 국제기구의 지원에는 미국과 일본의 동의가 필요하다.

북한과 일본 사이에는 정치적 문제 이외에도 약 1000억엔(약 1조원)에 이르는 채무 불이행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경제교류도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무역보험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재일기업가의 합병사업 등도 대부분 실패로 끝난 탓에 수출과 수입을 합쳐 5억달러(약 5500억원)를 넘지 못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현재 추진중인 한일 자유무역협정은 남북 경제교류의 진전이나 통일의 실현을 염두에 두고 보다 넓은 각도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일본이 공적자금뿐만 아니라 민간자본의 투자를 통해 남북경제교류에 큰 역할을 한다면 한일 자유무역협정은 폭넓은 경제교류 확대를 향해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일본과 일체화된 시장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표준이나 규격의 통일이 진행되고 상호인증이 이뤄지면 북한기업이 한국기업으로부터의 위탁가공 등을 시작으로 한국시장에의 진입을 통해 향후 일본시장의 진출도 가능해 질 것이다.

결국 일본시장과의 결속이나 산업조정이 서비스업, 지식기반산업의 육성을 촉진해 한국의 산업구조 전환을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북한지원의 부담을 가볍게 해줄 가능성이 높다.

▽북―일수교와 재일교포문제(다나카 히로시·田中宏 류코쿠대학 교수)〓북한과 일본의 수교는 재일교포의 지위 등에서 몇가지 문제를 낳을 것이다.

참정권 문제에 대해 한국계인 ‘민단’은 적극적인 반면, 북한계인 ‘조총련’은 소극적이다.

법안의 제안자인 보수정당은 이와 관련, 당사자간에 의견이 대립해 있는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태도이다. 하지만 일본내에서는 ‘영주 외국인의 참정권 보장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식의 극단적 반대론도 엄존한다. 이들의 논리는 참정권을 행사하려면 귀화하라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재일한국인의 외국인 등록에 있어 국적란에는 당초 ‘조선’이라고 표기해 왔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었지만 과거 사용하던 ‘조선’이란 표기도 남아있다.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 한국은 국적을 의미하지만 조선은 기호 내지 부호라고 설명한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일본정부는 조선도 국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한 국적표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본국법의 적용문제에 이르면 구체적인 일상생활과 직결된 문제로 다가온다.

일본정부는 재일한국인의 결혼, 양자입양, 상속 등에 있어서 승인국인 한국법령만을 인정했을 뿐 북한 법률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이 경우 편의에 따라 남과 북 사이에서 국적이동을 원하는 사례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민단과 조총련사이에 협의기관이 생겨나는 등 국적변경이나 참정권 문제에 새로운 변화 조짐이 있다.

▽토론〓북―일 수교는 일본보다는 북한의 입장에서 더욱 절실한 과제라는 점이 부각됐다.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금은 북한이 ‘정당한 요구’로서 얻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금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이나 ‘시장의 일체화’ 등을 통한 북한경제 활성화 방안은 장기적으로 볼 때 ‘가능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여부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명지대 북한학과 배성동(裵成東)교수는 “북―일관계 개선에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운을 뗀 뒤 “최근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를 지켜보면 북한이 과연 변화했는가에 대한 회의가 든다”고 지적했다. 배교수는 “북한과 일본이 수교협정을 맺고 거액의 보상금 등을 지불하게 될 경우 돈의 씀씀이에 대한 감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각(黃義珏)고려대교수는 “대북진출에 있어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 대북지원을 모색하고 한―일 공동의 인적 물적교류를 통해 대북지원을 하자는 것은 장기적으로 유익하지만 북한 경제는 만성적인 경제침체 등으로 장기적인 지원을 기다릴 여유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과 같은 규격의 제품을 만들어 공동진출한 뒤 대북지원에 같이 나서자고 한 것도 너무 멀고 이상적인 이야기”라며 “한국에게만 대북지원을 떠넘기지 말고 일본도 적극적인 경제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규(李光奎) 서울대교수는 “최근 민단이 자신들의 공식명칭을 ‘재일본 대한민국거류민단’에서 거류를 뺀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으로 개정했고, 조총련도 과거 북한의 지시에 맹종하던 자세를 벗어나는 등 한국과 북한의 영향력을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리〓홍성철·하태원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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