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칼라형' 이민 급증…올 이민자 최소 1만5000명

  • 입력 2000년 9월 19일 19시 27분


올들어 이민을 떠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한국에선 할 일이 없어 할 수 없이 떠나는 ‘생계형 이민’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사회적으로 상당히 성공한 ‘하이칼라형 이민’이 급증하는 추세다.

▽왜 이민을 가나〓얼마 전 캐나다 몬트리올로 독립취업이민이 확정된 박모씨(38). 외국계 사료회사의 영업부장으로 연봉만 무려 8000여만원을 받아온 엘리트다. 하지만 박씨는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국사회는 너무 경쟁이 치열해요. 그만큼 돈 벌기는 쉽겠지만…. 매일 ‘살아남으려고 바둥거린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살 필요가 있는가 고민을 많이 했지요.”

외국회사 10여년 경력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박씨지만 캐나다에서 ‘엘리트 직장’을 얻는 것은 포기했다. 쇼핑몰에서 잡화점을 열고 평범하게 살 계획이다. 박씨는 자신의 이민을 “복잡한 사회의 돈 많은 엘리트보다 조용한 사회의 한가로운 소시민을 선택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대기업 전무를 지낸 조모씨(61)도 최근 아내와 함께 호주 이민을 결심했다. 조씨 부부는 현재 부동산과 저축을 합친 재산이 20억원 가량이어서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젊은 시절에 돈 벌고 사회적 지위를 성취하기에 한국처럼 좋은 곳은 없지요. 하지만 노후를 보내기에 한국처럼 나쁜 곳이 또 없어요. 은퇴했는데도 항상 사람 관계 신경써야죠, 체면 생각해야죠, 사는 게 여전히 복잡하지 않습니까.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은 거의 없고요. 게다가 교통 막히고 공기 나쁘고 걸핏하면 대형사고에 정치는 짜증만 나고…. 한 번 마음이 떠나니까 모든 게 싫어집디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민 통계〓올 상반기 외교통상부에서 집계한 이민자는 7125명. 해마다 가을에 이민자 수가 더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이민자는 최소한 1만5000명을 넘을 것으로 이민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이민자수는 97년 1만2484명에서 국제통화기금(IMF)경제난이 한창이던 98년에는 ‘생계형 이민’이 늘어 1만3974명을 기록했다. 99년에는 1만2655명으로 줄었다가 올들어 다시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민수속 전문업체인 고려이주개발공사 이사로 있는 글로리아 김은 “이민자의 증가는 30대 젊은 엘리트와 60대 부유한 퇴직자 등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이민 신청이 급증했기 때문”이라며 “‘치열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었던 개발산업시대가 끝나면서 보다 안정적이고 가족적인 삶을 선호하는 새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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