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한달]병원-약국 "붙어있어야 산다"

  • 입력 2000년 8월 29일 18시 44분


H약국은 서울 양천구 목동 주택가에 위치한 ‘동네약국’이다. 의약분업 실시이후 인근에 병원이 없는 동네약국 중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 곳이 많은데도 이곳은 오히려 번창하고 있다. 이 약국과 함께 내과병원이 같은 건물에 들어있기 때문.

이 약국은 요즘 하루 평균 100여건의 처방전을 받고 있다. 이 약국 약사 강모씨(40)는 “전에는 내과병원을 주로 찾는 감기 환자들이 병원약을 갖고간 탓에 약국운영이 어려웠으나 지금은 병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관계서 공생관계로▼

경기 김포시의 한 아파트내 상가건물 1층에 있던 W약국은 아예 2층의 소아과병원 옆으로 옮겼다. 이 약국 약사 김모씨(42)는 “의약분업 실시로 처방전에 의해 약을 조제하게 된 만큼 소아과 환자들을 끌기 위해 이사했다”고 말했다.

의약분업 실시 한달을 맞으면서 종전 ‘경쟁관계’였던 병원과 약국이 이처럼 ‘공생(共生)관계’로 변모하고 있다.

의약분업 실시 전에는 특히 약국의 경우 행인이 많은 교차로 주변이나 번화가, 역주변 등이 가장 좋은 위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위에 병원이 없을 경우 약국은 생존이 불가능해졌다. 서울역 주변 한 약국의 약사는 “과거에 비해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대형약국 셔틀버스 운영▼

서울 구로구 구로동 공단거리에 있는 P약국 약사 박모씨도 “이전에는 주변에 공단도 있고 번화가여서 한달 순수입만 400만원 정도 올렸으나 이제는 약국 주변에 ‘동네병원’마저 없어 수입이 80%이상 줄었다”며 “약국 폐업을 심각히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변화의 바람은 국내 최대의 약국 거리인 서울 종로 5가에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 병원이 전혀 없는 이곳 약국들은 자구책으로 병원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대형약국들은 한결같이 “의약분업 실시로 손님이 30%이상 줄었다”며 “그나마 셔틀버스를 보내는 서울대병원과 이화여대병원 앞에 약국들이 들어서면 매출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한다.

반면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중앙병원 앞에 있는 D약국은 분업실시 이후 하루 평균 250건의 처방전을 받고 있으며 주변 약국 3곳 역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주변에 약국이 전혀 없었던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최근 병원 옆 연세대 동문회관 건물에 공개 입찰을 통해 약국을 입주시켰다. 서울 백병원의 한 의사는 “병원 주변 약국에 약이 많아야 환자가 늘기 때문에 앞으로는 주변 약국의 유무와 규모가 병원 경영과 직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두·이완배기자>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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