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배著 '도시공간…']여의도 공간 사회학적 분석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57분


“여의도의 공간은 한계에 부닥쳤다. 자본과 권력만 남고 시민과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이상 도시의 꿈은 무너지고…. 여의도의 쇠락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한국의 맨해튼으로 불리는 여의도(汝矣島). 한자 뜻 그대로 너나 가지라던 보잘 것 없는 작은 섬에서 금융 방송 정치 1번지로 숨가쁘게 발전해온 여의도. 그 여의도의 쇠락이 시간문제라니.

김왕배 연세대 강사(41·도시사회이론)는 최근 낸 저서 ‘도시 공간 생활세계’에서 여의도의 공간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칼날같은 비판을 내놓았다. 김씨는 이 글에서 1968년 여의도 종합개발 이래 지금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분석하고 그 공간의 현재 의미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했다.

김씨는 우선 ‘섬은 기본적으로 고립과 단절을 의미한다’는 견해에서 출발한다. 고립과 단절은 신비이고 동시에 근대인들의 모험 의식과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즉, 섬은 전통과의 단절이자 일종의 자유이고 해방이다. 자신의 새로운 의지를 표출하는 공간, 유토피아의 공간이기도 하다.

여의도 건설도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이었다. 당시 여의도는 사유지가 아닌 처녀지였고 따라서 도시 공간을 구상하고 실행하는데 있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정치권력과 자본의 뜻이 마음대로 투영된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유토피아의 도시, 여의도의 꿈은 한계에 봉착했다. 김씨는 여의도의 대표적 공간인 국회의사당 주변, 증권가 일대, 여의도 시민공원 분석을 통해 여의도의 한계를 제시한다. 나아가 여의도는 이제 자본과 권력만 남고 유토피아의 꿈은 사라져 버렸다고 결론짓는다.

“자본과 권력으로 도시 공간을 만들어나가겠다는 발상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것인지 모른다.”

이 글에서 김씨는 대안 제시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인간의 숨소리와 인간의 문화를 되찾을 때 여의도를 되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김왕배씨가 분석한 여의도의 대표공간▼

▽여의도 시민공원〓여의도 시민 공원엔 시민이 없다. 지금의 여의도 공원은 접근이 어렵다. 주변과의 단절이다. 공원 양쪽으로 도로와 거대한 금융기관의 빌딩과 방송사 건물들이 공원을 가두고 있다. 공원의 구조 자체 역시 공원을 스스로 가두고 있다. 시민을 가둔 것이다. 과거 여의도 광장은 5·16광장이란 이름에서 드러나듯 권위 독재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후 조금씩 시민의 열린 공간으로 변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공원 구조는 오히려 그 가능성을 막아 버린 박제화된 공간이다.

▽국회의사당 주변〓여의도 서쪽 국회의사당은 위엄을 과시라도 하는듯 그 앞으로 커다란 길(의사당로)이 나있다. 여의도를 관통하는 길, 마치 주작대로와 비슷하다. 그러나 의사당로 동쪽 끝에서 서쪽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기는 좋지만 걸어다니기는 어렵다. 게다가 서쪽이 다소 지반이 높아 의사당로에선 국회의사당을 보려면 늘 올려다 보아야 한다. 이는 국회의사당에서 서쪽을 내려다보는 것을 의미하고 그건 권력의 도취감을 뜻한다. 바로 한국정치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다. 의사당 건축물이 권위적 반(反)민주적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증권가 일대〓여의도는 자본의 공간이다. 80년대부터 경쟁적으로 세워진 초고압적인 증권사 건물들. 기존 업무 빌딩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긴 했지만 보행자와 주변 경관에 대한 무관심과 오만함은 극에 달하는 느낌이다. 이윤의 극대화만을 추구한 건축공간일 뿐. 증권거래소를 비롯해 모든 건물은 쉼터나 녹지 등 보행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없다. 건물에 일부 포스트모던한 장식을 꾸몄지만 거리와 인간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오로지 나르시즘적인 자기 과시에 불과하다. 증권가를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무겁게 긴장시킬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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