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풍납토성 훼손]사유재산권-유적 보호 "충돌"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당국의 허가를 받아 재개발 사업을 시행하던 주민들이 공사현장에서 문화재가 출토되면서 사업추진이 차질을 빚자 굴착기를 동원, 유적 발굴현장을 파괴해 주민의 재산권행사와 문화재 보존문제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풍납1동 136 일대 경당지구 재건축 아파트 예정지 초기백제 유적발굴현장이 재개발을 추진하는 주민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다. 이와 관련, 서울 송파경찰서는 재건축현장에서 풍납토성 유적 발굴현장을 파괴한 혐의(문화재보호법위반)로 이 아파트 재개발조합장 팽석락씨(43) 등 3명을 입건, 조사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오전 9시경 굴착기를 동원해 지난해 9월부터 유적발굴이 진행중인 현장의 유적중 유물발굴이 일단 끝난 유구를 흙으로 덮고 이중 일부는 굴착기로 파손했다.

이들이 파손한 유구(구조물)는 흙으로 지어진 저장시설과 건물지 집터 등 7곳으로 이중 4곳은 단순히 흙으로 덮여 바로 복원이 가능하지만 2곳은 유구의 일부가 파손됐으며 한곳은 4분의3 정도가 파괴돼 복원이 힘든 상태다.

유적현장 복원작업을 지도해온 한신대 권오영(權五榮·38)교수는 “파괴된 유적지의 유물발굴은 이미 끝난 상태지만 남아있는 유구를 보존할지 여부에 대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라며 “유물도 중요하지만 당시 풍납토성의 건물지 자체도 중요한 유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한신대 발굴팀측에서 이미 유물 발굴작업이 끝난 곳은 건축물 자재를 쌓기 위한 야적장으로 사용해도 좋다고 말했다”며 발굴팀에 책임을 돌렸다.

재개발조합 팽조합장은 “지난해말에 끝내기로 한 발굴작업이 5개월을 넘긴 채 계속돼 조합원들의 이자부담만 한달에 1억2000만원에 이른다”며 “5월초 발굴팀이 ‘중요 유구가 아닌 곳에 야적장을 만들어도 좋다’고 해서 공사에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발굴현장은 지난해 9월 이후 한신대박물관이 지금까지 발굴을 해오고 있는 곳으로 그동안 이곳에서는 왕실 고위직을 나타내는 ‘大夫’(대부) 및 ‘井’이라는 글자가 적힌 토기조각과 대형건물터를 비롯한 초기백제의 귀중한 유적과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그러나 발굴단과 공사시행자인 재건축조합이 발굴 비용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을 빚은데다 중간에 건설사인 대동건설이 부도가 나는 등 발굴중단 사태가 여러번 되풀이되면서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인 경제적 부담이 가중돼왔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 발굴에 따른 일체의 비용을 공사시행자에게 전액 부담시키고 있어 경당지구 재건축조합측은 이미 2억5000여만원의 발굴비용을 지불했으며 발굴완료 10여일을 남겨둔 7일 8000여만원의 추가발굴 비용 지출문제가 생겨 지금까지 발굴이 중단되고 있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풍납토성은 어떤 곳?/BC 1세기 백제왕성 위례 가능성▼

학계에서는 풍납토성은 백제가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던 기원전 1세기부터 전성기인 5세기까지 백제의 왕성으로 알려진 하남 위례성의 실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남 위례성은 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기기까지 493년간 백제의 수도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까지 그 위치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1963년 사적 11호로 지정된 풍납토성도 그 후보지 중 하나였지만 흙으로 지어졌다는 이유로 학계의 외면을 받아왔으나 최근 그 규모가 폭 40m, 높이 9m로 동양 최대의 판축토성(자갈과 흙을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아 만든 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경당지구 재개발현장에서 ‘대부(大夫)’라는 고대 궁중 최고의 관직명이 새겨진 토기가 출토된 데 이어 왕궁터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학계 해법 "정부-서울시 토지매입등 결단 시급"▼

이번 풍납토성 백제 유적지 파괴를 학계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발굴 중인 유적을 파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 수도였던 위례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중요한 유적이다. 이번 사태는 문화재 보존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문화재 보존과 현지 주민의 재산권 보호라는 두 원칙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 보존이라는 대원칙에 동의하면서도 현지 주민의 피해를 우려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문화재청은 “발굴이 마무리되고 유적의 성격이 제대로 밝혀져야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지역은 아파트 신축허가가 난 뒤 1997년 1월 공사 도중 백제유물이 발굴되면서 논란이 돼 왔다.

관련 학계는 이번 사태가 풍납토성 보존의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풍납토성을 발굴한 바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유전(趙由典)소장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현장 설명회가 열릴 때마다 조합측과 주민의 시위가 있었다. 학자들의 생각이야 당연히 풍납토성 보존이지만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곤란하다. 이제 서울시나 정부 등에서 토지매입 등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박영복(朴永福)문화유산국장 역시 “유적 원상 회복 등 사태를 수습하고 나면 정부 차원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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