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카드대금 연체때 아내예금 동결은 부당

  • 입력 2000년 5월 11일 19시 29분


유치원생인 아들이 자주 편도선이 부어 고열로 고통받자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게 했던 K씨. 아들의 생명보험사인 L사에 '수술비를 달라'고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L사의 논리는 '보험약관이 정한 수술 종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K씨는 금융감독원 산하 분쟁조정위원회에 구제를 요청했으나 조정위는 "수술은 '외과의사가 손 또는 기계로 하는 의료행위'를 의미하지만 생보약관이 인정하는 수술의 개념은 특정 대상에 국한된다"고 판단, L사의 손을 들어줬다.

평소 개구쟁이로 소문난 아들이 '사고를 칠 때'에 대비, 아들 이름으로 자녀사랑보험을 들었던 P씨.

야구놀이를 하던 아들이 던진 공을 친구가 제대로 받지 못해 앞니가 부러지자 보험사에 배상금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공을 던진 행위에 위법성이 없고 △경기를 보고 있던 P씨가 보호감독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거절했다.

자녀사랑보험은 불법행위와 보험감독 소홀의 경우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

분쟁조정위는 "보호자들이 감독의무를 게을리 하면 보험금을 타게 돼있지만 감독의무는 사고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경우에만 지게 된다"며 P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금감원이 11일 밝힌 지난달 금융분쟁 사례에는 이처럼 고객들이 계약서(보험약관)를 소홀히 읽어 낭패를 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총 1198건의 금융분쟁 중 신청인의 요청을 받아들인 경우는 41.2%에 불과했다.

자동차 사고를 한 차례 낸 뒤 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부친 명의로 다른 보험사에 가입한 회사원 A씨도 이런 사례 중 하나.

가입시 '자동차 명의를 부친 앞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지만 2년 동안 이를 미루다 사고를 냈고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모집인은 보험가입자와 자동차등록증에 나타난 소유자를 대조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가입자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분쟁사례 중엔 금융기관의 '편법'도 심각하게 나타났다. L씨는 거래하던 A은행에서 예금을 꺼내려다 지급 정지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주벽이 심한 남편이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했고 이에 따라 은행 채권회수팀이 남편 대신 L씨의 예금을 동결한 것.

L씨의 요청으로 금감원이 조사에 나서자 은행측은 "남편의 연락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며 예금지급 정지를 슬그머니 해제했다.

개미투자자인 C씨는 Q증권사에 계좌를 튼 뒤 증권카드를 받지 않고 창구직원에게 2000만원을 송금했다가 곤혹을 치렀다. 창구직원이 C씨의 자금을 유용해버린 것.

Q증권에 강력 항의한 C씨는 직원의 횡령사실을 밝히고 변제각서까지 받았지만 '카드를 수령하지 않고 개인통장에 송금한 과실이 인정돼' 원금의 70%만 받을 수 있었다.

명예퇴직금을 Q증권에 맡긴 S씨는 창구직원의 투자 권유에 따라 T전자 주식을 샀다가 큰손해를 봤다.

주가가 계속 떨어지는데도 직원은 '기다려보자'고 권유, 결과적으로 원금의 3분의 2를 날린 것.

S씨는 분쟁조정위에 구제신청을 냈지만 '직원 투자조언은 참고자료일 뿐 투자결과는 고객의 책임'이라는 결정에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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