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e가족]싱가포르/히아가족

  • 입력 2000년 5월 7일 22시 33분


①가족구성

▽아버지: 피터 히아(50·증권회사 계좌개설 담당)

▽어머니:비키 히아(48·조명회사 세일즈 매니저)

▽큰아들:존 히아(18·세랑군 단기대학 1학년)

▽작은아들:제임스 히아(14·마리스 스텔라 중학 3학년)

▽딸:조안 히아(11·성 니콜라스 여학교 5학년)

② 딸 조안

집에는 컴퓨터가 한대 뿐이다. 우리 3남매는 학교에서 귀가하는 순서대로 컴퓨터를 사용한다. 낮에는 나, 저녁에는 작은 오빠, 밤에는 큰 오빠의 차례다. 나는 학교에서 정보기술(IT) 관련 과목을 일주일에 2개 듣는다.

그러나 좋은 중학교에 가기 위한 입시경쟁이 치열해서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초등학교 4학년만 되면 아이들은 3개의 등급으로 나뉘어져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수준과 양의 공부를 시작한다.

입시과목인 영어 중국어 산수 자연 과목은 가정교사의 과외 지도를 받는 친구들이 태반인데 나는 중국어 과외만 한다. 중학생인 작은 오빠는 수학성적이 안좋아 수학 과외를 하는데 우리 모두 과외비를 대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

③차남 제임스

부모님이 모두 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집에는 먹고 자고 하는 필리핀 가정부가 있다. 우리는 가정부를 친척처럼 사랑한다. 여기서는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는 엄마보다 가정부를 더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가족의 끈’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가정부가 바뀌는 것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감을 경험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점에서 엄마가 일주일에 한번씩 나와 컴퓨터게임을 함께 해주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④히아 가족이 ‘우리 가정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꼽은 베스트 10.

존경과 사랑(1위)→가족 상호간 의사소통(2위)→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3위)→자녀 교육(4위)→몸에 좋은 음식을 골라 먹는 것(5위)→교회에 가는 것(6위)→직업(7위)→자동차(8위)→가정부(9위)→돈(10위)

⑤아버지 피터

우리 부부는 중국계이지만 영어에 합리적 사고가 녹아있다고 생각하므로 집에서도 공용어인 영어를 쓴다. 아이들은 아버지도 ‘너(You)’라고 부른다. 그래서인지 무조건 상명하복하지는 않으며 명령에는 반드시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는 서양적 사고가 있다.

아이들은 서양의 아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독립심이 강하고 진보적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아빠의 친구도 그냥 이름을 부르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아저씨(uncle)’라고 부른다. 서양의 합리적이고 평등지향적인 문화와 동양의 유교적 문화가 절묘하게 섞인 모습이다. 나는 아이들이 버릇없이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말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을 찾아 함께 식사하는 것을 정례화했다.

⑥히아 가족이 ‘인간적으로 보다 적절한 삶’을 살기 위해 매달 투자하는 항목들

막내딸 중국어 과외(주 2회)〓200싱가포르달러(14만원)

둘째 아들 수학과외(주 2회)〓250싱가포르달러(17만5000원)

인터넷 전용회선 사용료〓30싱가포르달러(2만1000원)

필리핀 가정부 월급〓400싱가포르달러(28만원)외에 외국인을 고용한 데 대한 세금 월 330싱가포르달러(23만1000원)의 추가비용

⑦어머니 비키

대형수퍼를 가는 대신 그 수퍼의 인터넷 사이트로 들어가 물건을 주문한다. 전자도서관에서 요리책과 인테리어서적을 찾아보고 사기도 한다. 그러나 직접 물건을 보고 무엇을 살까 망설이는 ‘인간적인 비용’도 참 매력적인 것 같아 아직은 사이버 세계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다.

일하는 주부들이 많은 이곳에서는 친구들과 모임을 갖는 데에는 사이버 공간이 효과적이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온라인 상에서 만나 서로의 회포를 푸는 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채팅으로 소일하는 것은 강하게 막는다. 최근 컴퓨터를 통해 만난 남녀간에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맞벌이를 하고 있으므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부부의 공동책임이다. 아이가 아프면 회사에 반나절 휴가를 내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은 남편의 몫이다.

(이 기사는 기자와 히아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각기 별도로 e메일을 주고 받은 내용을 기초로 씌여졌다. 가족사진은 어머니 비키가 사진필름을 스캐닝해 e메일로 보내온 것이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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