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42분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지음/가람기획 펴냄▼

아들의 방종으로 괴로워하는 한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철 좀 들어라. 공공장소에서 서성거리거나 거리를 배회하지 말고 …. 학교에 가서 과제물을 암송하고, 선생님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어라.”

지금 여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700여년전(기원전 1700년경), 남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의 이야기다. 이것은 청소년 문제에 관한 인류 최초의 기록이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경솔한 언동으로 선생님에게 매를 맞았다. 그는 아버지에게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해 선물로 기분을 바꿔드리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선생님을 초대해 함께 술을 마시며 선물을 주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것 역시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인이 남긴 ‘촌지’에 관한 인류 최초의 기록이다.

기원전 3000년경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설형문자)를 발명하고 수메르 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인. 그들은 점토판에 쐐기문자를 새겨 넣어 다양한 내용의 글을 남겨 놓았다. 이 책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 터키 이스탄불의 고대오리엔트박물관 등에 소장된 수백점의 수메르 점토판을 해독해 그 중 인류 최초에 관한 사실 39가지를 추려 모은 것이다.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인 저자는 수메르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법전과 판례, 학교제도, 세금감면, 문학논쟁, 의학서와 농업서, 사랑노래, 마라톤 우승자, 자장가, 도시지도 등 정치 교육 문화 법 철학 문학 농업 의학 생활 등 전 분야 ‘최초’를 망라한다. 5000여년전 그들이 이룩한 문명의 수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 내용 또한 시종 흥미롭다.

최초의 도서목록. 저자는 이 목록을 통해 수메르인들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보다는 현실적인 안녕, 공포 빈곤 전쟁으로부터의 자유을 갈망했던 것으로 추론한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법전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50년경)이 아니라 기원전 2000년경의 수메르 법전. 우리가 배워온 ‘세계 최초의 법전〓함무라비 법전’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인류 최초의 판례도 흥미롭다. 기원전 1850년경 수메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발사 정원사 등 세 사람이 한 관리를 살해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아내는 이들을 신고하지 않았다. 얼마후 세 명의 살인자와 피해자의 부인이 함께 기소되었다. 그 부인은 과연 무죄였을까 유죄였을까….

내용도 내용이지만 20여년 넘게 점토판 해독에만 매달려온 저자의 집념이 돋보인다. 박성식 옮김. 467쪽 1만4000원.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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