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강요된 신화/세계화에 맞설 정책대안 모색

  • 입력 2000년 3월 31일 21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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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1946년에 사망한 케인스가 되살아난다면 21세기 초입의 세계화 추세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시장지상주의적 세계화가 세계 전체의 후생을 향상시킨다는 신고전파주류 경제학자들의 낙관론에 동의할까, 아니면 금융세계화가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극단적으로 가속화시키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개별국가뿐만 아니라 지구전체 차원의 분배구조를 양극화시킬 것이라는 비관론적 분석과 판단을 수용할까?

십중팔구 그는 비관론 쪽에 설 것이다. 하지만 그 전망이 비관적일지라도 그것에 순응하는 것 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고 체념하는 운명론 내지 패배주의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사회의 미래에 대한 그의 믿음, 그리고 그의 견고한 현실주의적 사고는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도를 어떻게든 찾아내려 할 것이다.

‘세계화와 진보경제정책’이란 부제의 이 책(원제목 Globalization and Progressive Economic Policy)이 지닌 최대의 미덕은 바로 이러한 케인스적 낙관과 현실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책의 현실적 가치는 세계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 국내정책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검토한다는 데 있다.

사실 지금까지의 대안 논의는 기본적으로 세계적 차원의 시장통제 문제에 한정되어 왔다. 그것은 자유로운 금융자본이동 자유무역 초국적기업 등의 세계화 조건이 국민국가의 정책적 자율성을 완전히 박탈하기 때문에 개별국가 차원의 대응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실현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근본적 해결은 세계적 차원의 통제기제 확립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11편의 논문들은 이를 지나친 일반화 추상화라고 비판한다. 이 책의 필자들은 개별국가가 직면하는 세계화의 구체적 조건을 검토해보면 국민국가의 자율적 정책공간이 상당 정도 열려있다는 것을 다양한 분석과 사례를 통해서 주장한다. 이를테면 세계화의 제약 속에서도 평등주의적 성장은 국내정치 및 정책에 일차적으로 좌우된다는 점, 또 글로벌 통합의 틀 안에서도 총수요관리정책은 공공투자와 결합될 때에 여전히 효과적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역할강화, 증권거래세 도입, 차별적 자산준비금제도 도입 등은 금융세계화가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영미식 금융시스템의 폐해인 단기주의와 금융불안정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금융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중국과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탈규제와 개방정책이 없더라도 우호적인 외국인 직접투자유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이 책의 필자들은 여러 국내외적인 제약조건들이 함께 충족된다는 전제하에서만 이러한 진보적 경제정책이 작동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예를 들어 케인스적 전통에 서 있는 총수요관리와 지속가능한 경기부양정책은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외환시장 등의 복합적 제약을 정책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고려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정책대안들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이론적으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 진보적 경제정책이 세계화의 틈새를 노리는 단순한 기회주의적 전략이 아니라 정책수단으로서의 일반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이론모델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또하나 남겨진 과제는 국가기능에 대한 해명이다. 이 책은 세계화가 국민국가의 기능을 현저히 약화시키긴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시장주의의 폐해를 교정하여 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는 유력한 도구라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사실 국가만이 시장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일 것이다. 그러나 형평과 안정을 목표로 삼는 진보적 경제정책이 상정하는 국가는 현명하고도 임기응변적인 합리적 국가인데, 현실세계에서 이처럼 오류없이 복잡한 정책패키지를 중장기적으로 추진하여 시장을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통제가 하향분산적 시민사회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조절시스템도 검토할 만할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적어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노선이 아무런 숙고없이 IMF가 일방적으로 강요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이 책의 진보적 정책아이디어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구체적 정책대안 논의를 위한 유력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백영현 옮김, 432쪽 1만8000원.

김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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