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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3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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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듀어런스호가 가라앉았다. 도저히 더 써내려갈 수가 없다…’
1915년11월21일 오후 4시50분. 난파지점은 남위 68도38과 1/2부, 서경 52도 20부. 사람이 한번도 다녀간 적 없고, 설사 다녀갔다 해도 다시 오고 싶어하지 않을 남극해의 얼음바다였다. 선원 28명은 영국 탐험대. 1년4개월 전 그들은 대장 어니스트 섀클턴경의 지휘 아래 ‘남극횡단’이라는 인류사에 새로운 탐험기록을 보태기 위해 닻을 올렸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모험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했다. 살아남은 것이다. 이 책(원제 ‘Endurance’)은 그 탐험대가 537일만에 전원 살아서 뭍을 밟기까지의 기록이다.
시시각각 인무기로 닥쳐오는 거대한 얼음덩어리. 식량과 연료는 바닥나고 구조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희박하다. 육지의 사람들은 이미 실종된 그들을 잊었다.
사면초가인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대장인 섀클턴이었다. 낙관주의자이기는 했으나 명철한 지도자는 아니었던 리더. 사실 계속되는 새클턴의 판단착오가 대원들을 더욱 위험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대장이었다’. 카리스마가 이유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일체의 특권을 거부하고 대원들과 같은 음식, 같은 옷, 같은 의무를 고집했다. 그러나 ‘친근함’이 리더십일 수는 없었다.
‘섀클턴은 자신의 지위와 책임을 단 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에겐 휴식도 도피처도 없었다. 책임은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었다.’
반드시 대원들이 살아서 고향땅을 밟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섀클턴은 밧줄과 목공용 도끼만을 가지고 포경선 기지가 있는 사우스 조지아섬의 얼음산을 넘었다. 대장이 일엽편주인 보트에 몸을 싣고 구조대를 불러 오기 위해 떠난 후 대원들은 온갖 공상을 했지만 누구도 “배가 가라앉았을 거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믿음대로 대장은 구조선을 끌고 돌아왔다.
초판이 영국에서 출간된 것은 59년. 그러나 40년이 지난 99년에도 미국의 서평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등에 의해 ‘최고의 책’으로 꼽히는 애독서다. 이 책이 어떠한 경영 서적보다 리더십이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팀워크를 빼어나게 증언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질학자 레이먼드 프리슬리의 한마디는 이 책의 의미를 압축한다.
“과학적인 리더라면 스콧, 효율적인 여행은 아문센이 최고다. 그러나 여러분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다면 무릎을 꿇고 섀클턴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 유혜경 옮김. 328쪽. 85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