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증후군]두통…우울증…'벤처증후군' 아시나요?

  • 입력 2000년 2월 10일 20시 14분


대기업에 근무하다 지난해 말 통신장비업체인 L사로 옮긴 양모씨(30·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벤처기업 가서 스톡옵션 받아 좋겠다”는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매일 새벽 2,3시 퇴근하는 생활의 연속. ‘7시 출근 4시 퇴근’하는 대기업에서의 여유있는 생활에 익숙했던 몸이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잠깐씩 어깨가 결리는가 싶더니 이제는 하루도 어깨가 안 아픈 날이 없다. 만성두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자친구와 헤어져 우울증으로 병원까지 찾았다.

벤처 이직 열풍과 함께 양씨와 같은 ‘벤처증후군’을 겪는 사람이 늘고 있다.

▼생체시계▼

사람은 생체시계를 몸에 품고 산다. 하루 24시간 각자 생활하는 스타일에 맞춰 체내 호르몬의 분비량이 적당히 조절된다.

이 리듬이 깨지면 몸 속 각종 물질의 분비량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거나 적어지면서 몸에 이상이 생긴다. 시차가 바뀌는 해외여행의 경우 1주일정도면 생체시계가 현지시각에 맞춰지지만 벤처기업 이직처럼 ‘규칙적인 생활→불규칙한 생활의 연속’이 될 때 이상증상은 만성이 될 위험이 높다.

▼벤처증후군▼

이직 부서이동 등으로 수면과 생활패턴에 변화가 오면 ‘코티졸’이라는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온다. 이 호르몬이 너무 많거나 적어지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제기능을 하지 못해 계산 기억 사고 등 인지기능에 이상이 오면서 업무능력이 떨어진다.

또 체내의 신경전달물질인 ‘에프네프린’ 분비량이 급증하면서 혈압이 높아지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만성 고혈압에 걸릴 확률도 함께 높아진다. 자율신경계통의 흥분상태가 계속되면서 잠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 달정도 지나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각종 유행병에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

이 상태를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암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 실험에 따르면 생물학적으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쥐에게 강한 스트레스를 가했더니 80∼100%가 8∼18개월 내에 암에 걸렸다. 반면 같은 조건의 쥐에게 스트레스를 가하지 않았더니 7%만이 14개월 뒤 암에 걸렸다.

▼엔돌핀과 코티졸▼

사람이 일생동안 겪는 가장 큰 스트레스인 ‘배우자의 사망’을 100으로 봤을 때, 이직은 36으로 외과수술(50), 해고(45)에 버금가는 ‘메이저급 스트레스’다.

이직과 더불어 과중한 업무, 불규칙한 생활이 덤으로 따라오는 벤처이직은 36+α의 스트레스 강도.

그러나 이같은 스트레스가 오히려 몸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고대구로병원 정신과 정인과교수의 ‘골프 스트레스론’.

“내일 새벽 골프를 치러 가는 사람과 시험을 보러 가는 사람은 둘 다 잠을 못 이룬다. 그러나 골프를 치러 가는 사람의 몸에서는 엔돌핀이 분비되고 있고, 시험을 보러가는 사람의 몸에서는 코티졸이 분비된다.”

엔돌핀이냐 코티졸이냐는 ‘사령탑의 통제력’이 결정한다. 덕성여대 김미리혜교수(임상심리학박사)는 “스톡옵션으로 같은 10억원을 받아도 ‘내 일이다’라는 사람과 ‘나는 고용돼서 일한다’는 사람은 받는 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르다”고 지적.

김교수는 그러나 “긍정적인 스트레스라 하더라도 불규칙한 생활리듬 속에 살다보면 건강에 이상징후가 나타나더라도 이미 이에 적응돼 인식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며 “이직 부서이동 한두달 후에 자신의 상태를 체크한 뒤 필요할 경우 의사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벤처증후군' 자가진단법▼

△신체건강(빈번하게 혹은 심하게〓2, 가끔이나 약간〓1, 거의 아니면〓0)

1.머리가 무겁거나 아프다.

2.(밤에 자려고 할 때)어깨나 허리가 결린다.

3.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4. 잠을 깊이 못자고 중간에 깬다.

5.식후나 공복에 위가 아프다.

6.최근 몸무게가 늘거나 줄었다.

7.몸은 피곤한데도 잠이 잘 안 온다.

8.전보다 자주 아프다.

△정신건강(예〓1, 아니오〓0)

1.전에 비해 별 것 아닌 일에도 울컥한다.

2.퇴근해서도 일을 생각한다.

3.남의 강요에 의해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4,농담을 들어도 웃음이 안 나온다.

5.가족이나 친구들은 약속시간에 의례 내가 늦으리라고 생각한다.

6.일이 잘 풀리고 있을 때도 일이 걱정된다.

7.사람들과 만나면 지치는 느낌이다.

8.일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9.술을 마셔야 기분이 좋아진다.

10.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11.퇴근길에도 종종 일거리를 챙겨간다.

12.프로젝트 완성에 걸리는 시간을 실제보다 짧게 예상하고 막판에 몰아치게 된다.

(평가〓▽신체건강 △13점이상〓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다른 직장을 찾아볼 것 △6∼12점〓몸관리 잘 하면 OK △5점이하〓벤처가 체질에 맞는 듯.그러나 몸관리를 소홀히 하면 만성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정신건강 △8점 이상〓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고 있음.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상대나 취미를 찾을 것)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