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이청준作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

  • 입력 2000년 1월 21일 20시 12분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 이청준 지음/열림원 펴냄▼

작가 이청준. 그는 이야기꾼이다. 그중에서도 몇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왕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다. 그가 지어낸 소리꾼 이야기(서편제)는 지금까지 우리 백성이 두 번째로 많이 본 우리 영화가 되기도 했다.

그가 이번에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이야기꾼을 불러냈다. 새 소설 ‘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終生記)’(열림원).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바라는 마음을 쓴 거죠. 이야기꾼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업해야 할까, 라는….”

어린이책을 연상시키는 삽화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소설은 우화(寓話)의 숨결을 짙게 내뿜고 그런 만큼 편하게 읽힌다.

좁은 마을에 갇혀 사는 어린 소년 무소작. 까마득하게 넓은 세상 일을 알고 싶어 길을 떠난다. 나이가 들어서는 열사의 사막에서 돈을 벌어 세계를 떠돈다.

나이가 들자 모처럼 귀향길에 오르지만 마을은 수몰지구가 된 지 오래. 오갈데 없는 무소작은 사람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종생(終生)의 업을 삼는다.

방랑이 끝나자 비로소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상상력이나 현실, 그 하나만을 가지고서는 이야기가 존재할 수 없죠. 그 두 개의 축이 만나는 곳에서 이야기는 태어납니다.”

그러나 신기함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던 그의 이야기는 곧 외면당한다. 물고기에 온몸을 뜯어 먹히기 원하는 이상한 사람들 얘기를 들려주어도, 행선지 없이 떠도는 이상한 버스 얘기를 해도, 사람들은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별반 다를 것 없구만”하며 시큰둥해 하기 때문. 실망한 무소작에게 이장은 말한다. “진실이 실리지 못한 이야기는 더 허황된 거짓만 낳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이 우화는 이야기의 진정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작가는 92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소설 또한 … 내면의 갈등과 고뇌의 괴로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력 같은 것들이 두루 함께하고 있을 때라야 우리의 삶이나 세상에 대한 진정한 창조성을 발휘해나갈 수가 있다.”

그와 같이, 알레고리(寓意)의 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으면서도 이 소설은 작가가 지녀온 여러 중심적 요소를 그 속에 감추고 있다. ‘소설에 의해 소설의 반성을 개진하고’(오생근) ‘주인공이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탐색적 욕망의 주체가 되는’ (우찬제) 등 이청준 소설의 기본 동기들이 우화의 표피 밑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 것. 이 ‘동화같은’ 작품이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녹록치 않은 분석과 탐색을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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