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우주가 바뀌던날…'/영구불변의 진리는 없다

  • 입력 2000년 1월 7일 19시 53분


▼'우주가 바뀌던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 제임스 버크 지음/장석봉 옮김/지호 펴냄▼

'오늘날 우리는 3000년 전 알파벳에 의해 촉발된 사회적 혁명들 이래 가장 거대한 혁명의 입구에 서 있다.’

저자의 주장은 허풍이 아니다. 마이크로칩이 든 신분증 없이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방법이 없는 ‘디지털 환경’을 한번이라도 경험하고 나면 혁명은 뼈 속 깊이 체감된다. 변화의 선두에 선 자들은 ‘멋진 신세계’를 공약하지만 대다수 인류는 불안과 기대의 양 극을 오가며 어제까지의 진리가 새로운 기준에 의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지켜본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 문명이 시작된 현재의 인류가 가장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책에 들어 있는 예 한가지. ‘신께서 7일만에 우주를 완전불변으로 창조하셨다’ 고 믿었던 16세기 유럽인들이 1572년 갑자기 하늘에 나타나 2년간 빛나다 사라진 별을 설명할 수 없어 겪었던 혼란이 21세기 인간의 것보다 덜했을까.

그러나 그때까지의 진리가 무너졌다는 것이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 설명할 길 없는 별 덕분에 의문을 갖게 된 선인들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나아갔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의 진리는 다른 진리로 대체돼 왔다’고 말한다.

극단적 상대주의자인 저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천동설이었든 지동설이었든, 신화적이든 과학적이든 각 시대의 사람들은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그들 나름의 명백한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당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변하면 세계(우주)도 바뀐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상대주의 관점이 달갑지 않은 독자라도 이 책에 소개된 진리변천의 사례를 읽는 일은 즐거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영이(英伊)사전 편찬자로 일했던 저자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같다. 저자를 따라 고대 그리스로부터 20세기까지 서구의 ‘진리’ 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산책하는 것은 고급한 지식사 기행이다.

15세기 이탈리아인이 아라비아인으로부터 원근법을 배운 일은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리는’ 회화기법의 혁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주관적인 견해를 갖는 일이 신학적으로도 금기였지만 원근법의 도움으로 멀리 있는 것도 정확하게 그 크기를 알 수 있게 되자 ‘나의 관점’이 중요해 졌다.

‘나’ 의 발견은 갑남을녀의 이야기, ‘노벨라(Novella, 소설)’ 를 탄생시켰다. 가장 획기적인 부산물은 지구 저편의 ‘금 진주 보석으로 가득한 일본’을 그린 지도였다. 이 지도를 품고 항해를 떠났던 콜롬부스는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다. 이렇게 저자는 ‘원근법’ 하나로도 당대 삶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한 고리에 꿴다.

저자의 말대로 진리가 상대적이라면 ‘우리가 찾는 진리가 있기나 한 것일까’. 그러나 회의론이 상대주의의 유일한 결론은 아니다. 15세기인들이 별들이 천구(天球)에 붙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다른 세계관으로 옮겨가며 살았듯이 우리도 당면한 지식혁명을 헤쳐나갈 것이다. 그 다음은 어쩌면 ‘멋진 신세계’일 지도 모를 일 아닌가. 지호. 458쪽. 1만9000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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