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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1월 12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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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욕망과 가능성이라는 양극 사이를 항해한다. 가능성이 없는 욕망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 또 욕망이 없는 가능성은 지루할 뿐이다. 몽상과 유토피아적 이상에 대해 저항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실험에서는 상상력이 허용된다.
―프랑수아 자콥
“과학 발전의 원동력은 결코 과학이 아니다. 상상력이다.”
이렇게 말하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콥(79). 진정으로 위대한 과학자는 결코 신을 부정하거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지 않는 자임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유전공학 생명공학 등으로 21세기 과학의 핵심 분야로 떠오른 생물학. 그 생물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떠한 존재인가.
이 책은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생물학자 자콥이 이 시대에 던지는 고뇌의 메시지다. 자신의 생물학 연구 편력과 연구 방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물학에 있어 아름다움과 참됨, 선과 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뇌의 흔적까지 담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다.
책의 제목은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 왜 파리 생쥐 인간인가. 파리와 생쥐는 유전학연구의 주요 실험 대상이고, 이 실험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콥은 우선 ‘과학자는 욕망과 가능성이라는 양극 사이를 항해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로 글을 시작한다. 욕망이 상상력이라면 가능성은 과학적 객관적 법칙이다. 과학 연구의 결과는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실험과정은 상상력으로 가득할 수 있다. “명백히 만족스러운 과학이 되기까지 그 과정은 신화적 상상과 흡사하다”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말처럼.
자콥은 한 발 더 나아가 ‘문득 깨달음’이 예상 밖의 연구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그에 앞서 치열한 고뇌와 탐색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과학은 신화 문학 예술과 통한다.
생물학과 문학의 관련을 짚어내는 대목도 매력적이다. 생물학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다룬다. 자콥에 따르면 유럽에서 생물학이 집중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됐던 시기는 자살이 처음으로 문학에 등장(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했던 18세기말과 일치한다.
글의 전편에 넘쳐나는 신화 문학 예술에 관한 자콥의 해박함! 그 현란한 해박함이 읽는 이를 매료시킨다.
자콥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시 생물학이다. 생물학 과학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겸허하면서도 진지하다. 그리고 열려 있다. 과학의 탐구에는 한계가 있다는 그의 생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의미는 무엇이고 만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등의 질문에 과학이 답할 수 없다는 것이 자콥의 생각. 그같은 궁극적인 대답은 종교나 형이상학 시(詩)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과학에는 분명 선과 악의 양면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과학은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유전자 암호해독으로 45세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던 자콥의 생물학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의 표현이다. 50년 넘게 생물학의 외길을 걸어온 자콥.
생물학이나 과학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만하다. 특히 시각이 새롭고 풍요롭다. 이정희 옮김. 224쪽 9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