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뚜쟁이인가 예술가인가」

  • 입력 1999년 4월 16일 18시 38분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의 대표작 ‘벌거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 마야가 아닌 마하다. 이 중 ‘벌거벗은 마하’(1790년대 말 제작 추정)는 고야의 유일한 누드화다. 고야는 이 그림으로 인해 외설 시비에 휘말려 종교재판까지 받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작품도 1백여년 동안 어두침침한 창고 속에 파묻혀 있어야만 했고.

‘벌거벗은 마하’는 과연 외설인가, 예술인가? 고야는 뚜쟁이(포르노 화가)였던가, 진정한 예술가였던가?

독일의 문예비평가 이반 나겔은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아간다. 이 두 작품은 고야의 생존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미술사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돼왔다. 모델은 누구였으며 두 작품이 원래 서로 뒷면을 맞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옷 입은 마하’가 ‘벌거벗은 마하’의 모사품은 아닐까 등등.

저자는 풍부한 관련자료를 통해 이러한 의문점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한다. 그가 궁극적으로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고야가 왜 이 두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점. 그것을 당대의 사회 역사 문화적 배경속에서 찾아낸다. 결론은 ‘저항의 산물’이자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1800년 전후는 프랑스혁명의 불길이 유럽 전역을 휩쓸던 변혁의 시기. 아웃사이더 예술가로 영원한 반항적 기질을 지녔던 고야는 당시 전제정치를 비판하고 종교의 자유를 외치다 프랑스로 쫓겨나기도 했다.

고야가 엄숙한 귀족주의 예술관에 반기를 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러한 맥락에서 ‘벌거벗은 마하’가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벌거벗은 마하’의 시선은 남자를 갈망한다. 유혹하면서 조롱한다. 뻔뻔하고 무례하다. 이 무례한 모험이 고야의 특성이다. 우리의 시선을 벌거벗은 인간의 현실로 끌어내렸다. 이 작품은 감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기록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왜 벌거벗은 여인과 옷 입은 여인의 두 작품을 그렸던 것일까? 저자는 두 작품의 ‘어울리지 않음, 낯섦’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낯섦은 충격이다. 그것은 하나의 위트이자 세상에 대한 풍자다. 고야를 더이상 흥미나 신비의 베일에 가두어선 안된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