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지휘­음악수업 박태영씨 한국서 첫 연주

  • 입력 1999년 3월 21일 18시 26분


북한에서 교육받고 러시아에서 꽃을 피운 재일교포 출신의 한 지휘자가 한국악단을 처음 지휘, 어떤 선율을 들려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 바로크합주단 정기연주회를 지휘하는 박태영(36·러시아 두다로바 국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조총련계 재일교포 출신인 그는 84∼89년 6년 동안 평양 음악무용대학에서 지휘공부를 했다.

“83년 일본 조선대를 졸업한 후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북한 유일의 고등음악교육기관인 평양 음악무용대에 입학했죠. 그뒤에는 일본에서 과제를 받아 공부한 후 과제물을 우편을 통해 북한으로 보내고, 1년에 2∼3회씩 두 달간 북한에 들어가 실기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때 평양음악무용대에서 지휘과교수 오일룡과 북한 국립교향악단 음악감독 김병화에게서 지휘를 배웠다. 평양에서 받은 철저한 지휘훈련이 훗날 모스크바음악원의 유학생활에 큰 도움이 됐고 현재 러시아에서 지휘자로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는 북한 음악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특히 북한 악단의 현의 합주력은 놀랄만해 60년대 대지휘자 므라빈스키가 이끌던 레닌그라드 필하모니를 연상시킨다는 것. “북한 국립교향악단은 일본 NHK교향악단을 능가하는 수준높은 합주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한정된 레퍼토리만을 반복연주해 북한 악단의 수준이 높다는 일부의 편견은 오해라고 밝혔다.

북한 체류기간 동안 매주 수요일 북한 국립교향악단의 연주를 감상했는데 매우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

그가 북한을 등진 것은 지나친 간섭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 북한체류 동안 상부의 간섭으로 암투병중이던 숙부(북송동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것도 고뇌의 흔적으로 남았다. “93년 한국국적을 택했습니다. 처음엔 비밀로 했는데, 아버지가 나중에 아시게 되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죠.”

92년 모스크바음악원에 유학한 그는 졸업후 여러 관현악단을 지휘하며 승승장구, 97년 이후 두다로바 국립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재직 중이다.

한편 지난해 11월 ‘윤이상 통일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온 한국예술종합학교 작곡과 이건용교수는 “김병화가 지휘하는 국립교향악단의 연주회를 감상했는데 흠잡을 데 없는 합주력이 인상적이었다”며 “그러나 북한의 음악교육과 악단구성은 철저한 계획에 따른 엘리트주의를 택하고 있어 우리 음악계와 단순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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