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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0월 14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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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 잘못 던져진 야구공이 인연이 돼 결혼한 뒤 38년간 한결같은 사랑을 나누어온 양철수 한정자 부부. 그 둘 사이에 태어난 다섯딸, 월옥 화옥 수옥 모옥 일옥.
소설은 잔잔한 일상의 사건들로 채워진다. 지나치리만치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에 바쁜 월옥, 딸들 중 가장 예쁘지만 늘 남편이 자기 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줄까 전전긍긍하는 셋째딸 수옥. 그리고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오래 가슴앓이를 하는 모옥.
그러나 작가는 섹스신도 없고 식구들끼리 언성 높이는 다툼 한번 하지 않는 덤덤한 이야기들 속에 사랑과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무심한 듯 배치해 놓는다. 막내딸 일옥이 스스로 가족을 택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믿는 것이나, 맞선자리에서 만난 모옥과 유학생 청년 주노가 첫 대면을 마치고 헤어지는 순간 부드럽고 살아있는 빛에 둘러 싸였다는 묘사 등이 그런 생각의 일단을 드러내는 부분.
부부나 부모 자식은 생애 이전에 운명지어진 인연으로 만난 사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작가는 “우주에는 꿈이 가득 차 있고 인간의 삶이란 그 꿈을 살아내는 것에 다름 아닌 것 같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사람’의 미음 받침이 세월에 깎이면 ‘사랑’이 되는 것이니 삶이란 곧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작가. ‘가족해체’ ‘개인화’가 세기적 징후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도 인간관계의 본질은 여전히 ‘사랑’이라는 믿음을 변함없이 그려나간다. 그 믿음은 어린 자식들이 잠들 때까지 노래를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시인 아버지 김동환과 소설가 어머니 최정희가 그이 속에 씨앗으로 뿌려준 것일까.
<정은령 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