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와 「GU」한字의 차가 4억소송 불렀다

  • 입력 1998년 8월 18일 19시 41분


‘알파벳 소송.’

영문 알파벳 한 글자의 차이가 한중(韓中)은행간의 억대 소송을 낳았다. 이 소송은 중국은행이 최근 한국외환은행이 지불요청한 31만5천달러(17일 현재 환율로 약 4억2천만원)짜리 신용장에 대한 지급을 거절한게 발단이 됐다.

이유는 “신용장상의 주소 ‘KANGNAM―KU’와 운송서류상의 주소 ‘KANGNAM―GU’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행정구역 구(區)의 표기가 ‘KU’와 ‘GU’로 다르게 돼 있는 것이 빌미가 된 셈이다.

외환은행측은 18일 “자구(字句)에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문언(文言)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훼손하지 않는 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며 중국은행을 상대로 신용장금액지급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원고측은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혼용되는 ‘KU’와 ‘GU’의 차이를 트집잡는 것은 피고측의 억지”라고 주장했다.

모은행의 신용장 담당자는 이에 대해 “예전에는 오탈자(誤脫字) 등 경미한 자구의 불일치도 신용장 금액에 대한 지급을 거절하는 이유가 됐지만 몇년 전 ‘신용장 통일규칙’이 개정된 뒤부터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승패가 뻔할 것 같은 신용장 소송도 정작 재판을 시작하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게 판사들의 지적이다.

서울고법 국제거래전담재판부 관계자는 “신용장대금 소송은 관련 법률이나 국제조약이 없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국제소송 중 하나”라며 “보통 2∼3년에서 최대 7∼8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거래상의 서류에 알파벳 한 글자라도 정확히 통일되게 기재해 불필요한 시비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충고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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