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수재민 최수경씨의 하루]『오늘은 뭘 꺼내나?』

  • 입력 1998년 8월 11일 19시 30분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흙먼지를 뿜는 차량들.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쓴 장롱과 옷가지 가구 등이 곳곳에 널려 있는 11일 의정부 3동 경의초등학교 앞.

하천이 범람해 지상 1층까지 잠겼던 이곳은 대야를 꺼내놓고 옷가지에 밴 흙탕물을 빼는 아낙들과 군인, 자원봉사자들로 하루종일 붐볐다.

경의초등학교 6학년1반 교실에서 24명의 이재민과 스티로폼을 깔고 잠을 잔 최수경씨(39·건설 노동자)는 오전 5시반경 눈을 뜬 뒤 하늘부터 쳐다봤다.

“오늘은 장롱을 꺼내야할텐데….” 그는 잠든 딸아이 둘을 바라보며 7시부터 시작되는 배급을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최씨의 지하 방 두칸은 천장까지 물에 잠겼다. 보일러에서 넘친 기름과 화장실 분뇨가 뒤엉겨붙은 가재도구를 아쉬워할 때가 아니라 가족이 무사한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는 좀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방범창 때문에 장롱을 부수어 꺼내기로 했다. 가재도구를 닦던 아내는 장롱 부서지는 소리에 달려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고 그는 “학교로 돌아가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정오. 계속 컵라면을 먹다가 탈이 날 것 같아 최씨는 허기진 배를 안고 학교로 돌아와 줄을 섰다.

구호품은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았다. 식구 중 한 명이라도 학교에 남아 있는 이재민들에게나 혜택이 돌아가고 이재민 대부분은 이불 한 장 받지 못했다. 의약품도 저녁엔 남아있지 않고 자원봉사자는 많지만 도움이 되는 사람은 군인뿐이다. 먹을 물도 모자란다.

오후 7시. 노인과 아이들만 남아있던 학교로 사람들이 돌아오자 교실은 이내 가득찼다. 앞으로 친척집과 여관을 전전하던 사람들이 몰려오면 교실은 더욱 비좁아 질 것이다.

어제 저녁엔 큰딸의 몸에 두드러기가 나 잠을 설쳤다. 수인성 전염병이 아닌가 의료봉사단을 찾았지만 다행히 씻지 못해 생긴 피부병이란다.

밤 11시. 땀냄새와 악취가 뒤섞인 매캐한 냄새가 밀려들고 모기가 ‘윙윙’거린다. 한 구석에서 술을 마시는 이들의 소란 속에서 맴도는 상념을 헤아리다보니 벌써 새벽녘이다.

〈이훈·권재현·이승재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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