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 「소리없는 선교전쟁」…법회-간증행사 다채

  • 입력 1998년 6월 1일 20시 10분


소리없는 포교 전쟁.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이 종교계의 새로운 선교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고시공부하면 으레 ‘절’을 떠올릴 정도로 고시와 불교의 인연은 각별했다. 그러나 80년대 말 이후 고시 공부도 정보화의 물결을 타면서 고시생들은 하나둘씩 절을 떠나 신림동으로 몰려 들었다.

고시원 5백여개가 밀집돼 있는 신림동의 상주 고시생은 약 4만여명. 사법 행정 외무고시 등 주요 고시 합격자의 70% 이상이 배출되는 이곳은 미래의 사회 지도층에 대한 선교라는 의미에서 종교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신림동 고시촌 포교에 가장 적극적인 교단은 불교계. 지난해 결성돼 고시생들을 상대로 문서 포교를 펼치는 ‘인재불사(人才佛事)연구원’이 그 중심. 이 모임의 김성산회장은 “불사(佛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 불사”라며 “현재는 문서 포교에 치중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종단의 지원을 얻어 법당 등 각종 복지시설을 마련하고 참선 수련회와 같은 행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림동 산기슭에 있는 ‘연화정사’와 ‘약수사’에서는 주말마다 고시생을 위한 특별 법회를 연다. 평소에도 공부에 지친 고시생들이 기도와 참선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개신교도 고시생 선교에 적극적. 이 지역 교회가 해마다 연합으로 벌이는 ‘관악 고시촌 축제’는 올해로 네번째. 타 종교 고시생들도 많이 참석할 만큼 인기가 높다. 지난해 행사에서는 현직 부장판검사, 고위 공무원, 사법연수원인사들을 초청해 수험생들에게 최신정보를 제공하고 신앙간증의 시간도 마련했다.

신림동에는 유난히 기독교 관련 고시원 이름이 많다. 할렐루야 고시원, 솔로몬 고시원, 요세피나 고시원…. 지역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사업도 하면서 선교도 할 수 있는 고시원 운영을 적극 권장하고 있기 때문. 교인이 운영하는 일부 고시원은 선교 차원에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증산도, 통일교, 예수전도단, 고시촌 전도모임 등 다른 선교 단체도 드러나진 않지만 맨투맨식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절에서 고시공부를 했다는 김종훈변호사는 “불자는 아니었지만 정신적 방황이 심할 때 조용한 산사분위기가 마음을 잡는데 큰도움이 됐다”며 “신림동 고시촌에서도 종교단체들이 선교경쟁보다는 고시생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참다운 인생관 직업관을 심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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