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중편릴레이 연재 3人/공지영]

  • 입력 1998년 4월 30일 20시 08분


《뚜렷이 다른 빛으로 반짝이며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30대의 세 여성작가 공지영 전경린 은희경. 그녀들이 어떤 그림을 완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각기 다른 붓과 물감을 든 세 사람은 1일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를 시작으로 올해말까지 서로 바통을 주고 받으며 동아일보 연재소설을 이어나간다. 각자에게 부여된 시간은 두달반 남짓. 출발선에 선 세 사람으로부터 연재 구상을 들어본다.》

공지영은 서울내기다. 전쟁통에 삼팔선을 넘어왔거나 60, 70년대에 남부여대(男負女戴)해 호남선 경부선을 타고 서울로 올라온 ‘반(半) 서울내기’와 달리 4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다.

“고향이 서울이니까 60년대 서울을 그려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봉순이 언니’를 쓰기 시작하며 제가 태어나 처음 자랐던 아현동 마포 신촌 일대의 그때 그 당시 모습을 사진처럼 떠올려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때 통닭집 이름은 뭐였더라? 소아과도 있었는데, 미장원은….”

그가 그리려는 것이 당시 서울의 풍경만은 아니다. 이 복고화를 통해 60년대에 태어나 급속한 경제성장의 와중에서 자라난 자기 세대의 모습을 원점부터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80년대 사회변혁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까지도 물질적 성장이나 풍요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어요. 어쨌든 우리 세대는 자고나면 TV가 들어오고 자고나면 더 큰 집으로 이사가는 상대적 풍요 속에 자라났으니 현재의 경제위기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재난인 셈이지요.”

‘성장이란 게 우리 삶에 준 게 도대체 뭐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이런 막막함 속에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그의 망막에 떠오른 인물이 바로 ‘봉순이 언니’였다. 부당한 세상으로부터 울타리가 되어준 사람. 나이 먹으며 사람한테 치이고 상처입을 때마다 떠올리게 되던 애틋한 첫 정. 그러나 작가가 ‘봉순이 언니’를 막연한 그리움만으로 되돌아보는 것은 아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겠다고 하니까 서울토박이들이 ‘식모언니’에 대한 자기 기억을 보태주더군요. 숟가락 하나 더 놓을 여유만 있으면 셋방살이 하던 사람도 하나씩 데리고 있던 식모언니, 그들은 결국 농촌에서 올라온 누군가의 딸이었지요.”

공지영은 자신의 출생연도인 63년을 제1차 경제개발계획(62∼66년)으로 한국사회의 계층적 분열이 가속화되는 시기로 파악한다. 누군가는 ‘봉순이 언니’의 주인집 짱이네처럼 중산층이 되고 누군가는 봉순이 언니처럼 한없이 좌절하고 사회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과정을 피와 살이 도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제 기억이 허락하는 한 실명을 고수하려 합니다. 주인공 짱이가 저와 너무 동일시될까봐 걱정이네요.”

▼ 약력 ▼

△63년 서울 출생

△연세대 영문과 졸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창작집 ‘인간에 대한 예의’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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