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한파에 가정까지 『흔들』…매맞는 주부 급증

  • 입력 1998년 4월 2일 20시 02분


아내는 남편에게 말한다. 남부럽지 않던 가정이 당신의 폭력 때문에 무너졌다고. 남편은 달라진 아내가 못마땅하다. 직장을 잃어 가장노릇을 못한다고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IMF로 흔들리는 가정 그리고 부부관계.

회사원인 남편, 두돌 지난 딸아이와 함께 화목하게 살던 주부 K씨(30). 지난해말 느닷없이 해고 통보를 받은 남편에게 딸을 맡기고 파출부 생활을 시작했다.

석달쯤 지났을까. 남편이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일감이 밀려 집에 늦게 들어간 것이 화근. 술취한 남편은 울어대는 아이 앞에서 “누구와 바람을 피우러 다니느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가난은 참을 수 있어도 남편의 주먹질은 당해낼 수 없었어요. 그렇게 착한 사람이었는데….”

K씨는 딸과 함께 서울시가 운영하는 ‘가정폭력피해자 일시보호시설’에 들어갔다. 지난해만 해도 40명 정원을 못 채우던 이곳은 K씨처럼 남편의 손찌검을 견디다 못해 도망친 주부가 크게 늘어 수십명이 기다리고 있다.

1월에 개설한 여성 전용전화에는 남편이 IMF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풀려고 한다며 하소연하는 사례가 하루평균 15∼20통 이어진다. 서울시 가정상담소는 이런 전화가 올들어 2천8백75건으로 지난해보다 11.9% 늘었다고 한다.

‘남성의 전화’ ‘아버지의 전화’를 들어보면 사정은 정반대다. 실직남편 대신 부업전선에 나선 아내의 목소리가 너무 커졌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생활의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는 크게 줄고 “돈 못버는 남편을 시시하게 본다” “바깥으로 돌아다니더니 외도에 빠졌다”고 하소연하는 전화가 절반 이상. 가출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지치면 이혼절차를 문의한다. 경기 연천에서 축산업을 하다 부도난 L씨(51)처럼 식당일을 하던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다 밀쳐 숨지게 한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이진영·박윤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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