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경화증 한국대학 르포]교수사회 학맥-인맥 판친다

  • 입력 1998년 3월 21일 10시 33분


피가 멈췄다. 하지만 수혈을 하거나 막힌 곳을 뚫을 방법도 없고 의욕도 없다. 바로 오늘 우리 대학의 현주소. 그저 그 자리에 고여있을 뿐인 한국의 대학, 대학교수사회다.

학기초만 되면 교수 임용 비리가 터져나오고 공부 안하는 교수 얘기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강의부담 연구비부족 등 대학의 여건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앞서 교수들과 대학 당국은 얼마나 스스로를 채찍질해왔는지.

97년4월1일 현재 전국의 전임강사급 이상 교수는 4만3천9백여명.

이들의 세계과학기술논문 발표 순위는 96년말 현재 세계 19위. 총 7천3백여편으로 1위인 미국의 38분의 1이고 2위인 영국의 10분의 1. 특히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미국의 과학인용색인(SCI)에 실린 논문수를 보면 서울대가 세계 8백68위에 머물러 한국 최고의 대학이란 이름을 무색케 한다. 93∼95년까지 3년동안 논문을 한편도 발표하지 않은 교수도 전체의 14%.

교수들은 왜 이렇게 정체되어 있는가.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는 꽉 막혀버린 연구인력 순환. 새로운 인력, 뛰어난 인력이 적소(適所)에 충원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여있는 물은 썩게 마련.

이같은 문제는 학연 지연 돈에 멍들대로 멍들어버린 신규 채용 비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임용된 뒤에 인력이 순환되지 않고 한곳에 틀어박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첫째 원인은 너무 쉽게 정년이 보장된다는 점. 미국 MIT대의 경우 5명중 1명만이 정년이 보장될 뿐이다. 스탠퍼드대에선 조교수가 7년 이내에 부교수가 되지 못하면 대학을 떠나야 한다.

96년 우리 국공립대의 승진 탈락률은 약 15%다. 그러나 탈락자들이 다시 1,2년 이내에 무리없이 승급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탈락자는 별로 없는 셈.

안이한 정년 보장은 잘못된 교수 승진제도와 맞물려 있다. 거의 모든 대학들이 승진을 위한 교수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지극히 비합리적이다.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호봉과 학연 지연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조동일 서울대교수는 “연구성과가 좋으면 연령에 제한없이 승급해야 한다. 젊은 나이에 정교수가 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앞이 꽉 막힌 교수 승진 제도를 비판했다.

승진제도의 문제점이 해결되려면 교수평가의 핵심인 연구업적(논문)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내용이나 질은 따지지 않고 그저 1년 단위의 논문 편수에만 집착한다. 그러다보니 2,3년 이상 걸리는 중장기 연구에 매달리는 교수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찾아오는 것은 연구 성과의 빈곤과 질적 저하.

논문 평가의 공정성은 더욱 시급하다. 같은 대학, 같은 전공 교수들이 주로 평가하다보니 선후배 등 학연 인연에 얽매여 냉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 타대학 타분야 교수도 참여해 익명으로 평가하는 공동 평가단의 구성이 절실하다는 의견이다.

인력 순환의 정체를 초래하는 또 다른 원인은 교수들의 대학간 이동이 거의 없다는 점. 여러 대학을 거친 것이 오히려 중요한 경력이 되는 미국 캐나다와는 정반대다. 우리의 경우 임용이 어려우니 한번 채용되면 그 대학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한다. 다른 대학으로 가면 그곳의 학연 지연에 부닥치기 때문에 자리 이동은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교수사회가 인맥 학맥에 얽매이는 현실, 학문 발전을 위한 교수들간의 토론이 거의 없는 현실, 선배 스승의 오류를 눈감아버리는 현실. 이 악순환은 대학사회의 정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수들의 대학간 이동이 활성화되어야만 의욕적인 연구 분위기가 새롭게 조성될 수 있다. 그래야 나태한 교수들은 떨어져 나가고 경쟁력 있는 교수들이 살아 남는 것이다.

피가 멈춰버린 한국의 대학.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숱한 진단과 처방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교수 대학 교육당국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비극적 상황은 결국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 하나가 국공립대 통폐합론. 대학들이 각각의 특성도 없는 마당에 서울대 부산대 제주대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이야기다. 그저 대학의 서열화만 초래하는 지금의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의 국공립대를 통폐합, 교수들을 전공별로 재배치하고 수시로 이동시키는 일대 혁명을 단행하자는 주장이다.

박거용 상명대교수는 “이같은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 없이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혁명이 아니고선 문제해결이 불가능해진 교수사회. 제도도 제도지만 교수들이 나태와 비양심을 떨쳐버리고 철저한 자기 혁신을 꾀하지 않는 한 우리 대학은 영영 회복 불능에 빠질지 모른다.

김영민 한일신학대교수가 내던진 한마디가 아프게 다가온다. “대학은 고립된 섬과 같다. 그리고 거기 갇혀 있는 교수는 ‘담뱃가게 아저씨’에 불과하다. 그들의 눈이 더이상 빛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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