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문화재]인천 답동성당,1백년 선교역사 간직

입력 1998-03-07 09:56수정 2009-09-2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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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답동성당(사적제287호)은 천주교의 인천지역 선교활동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인천에서 선교활동이 시작된 것은 1889년. 당시 파리 외방전(外邦傳)교회소속 선교사인 빌렘(한국명 홍석구·洪錫九)신부가 초대 인천 본당신부로 임명되면서 이듬해 성당 건축공사도 시작됐다.

1890년 답동언덕 3천2백여평 부지에 임시성당이 먼저 건립됐고 연면적 3백2평 규모의 본성당은 1897년 완공됐다.

그후 4대 본당신부로 임명된 드뇌(한국명 김학준·金學俊)신부는 1934년 기존건물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겉면에 적벽돌을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답동성당이 들어서기 1백여년전에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탄생했을 정도로 인천지역은 천주교와 인연이 깊다.

한국 최초의 영세자로 서울 명동에서 천주교회를 창설한 베드로 이승훈(李承薰·1756∼1801년)은 평창 이씨 집성촌인 인천 남동구 장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국 신부 주문모(周文謀)의 포교활동을 도와주다 신유박해때 참수형을 당했다.

답동성당은 서울 명동성당과 마찬가지로 인천지역의 ‘시위 메카’. 그동안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건설반대, 영흥도화력발전소 건설반대 등 주민들의 천막농성이 끊이지 않았다.

〈인천〓박희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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