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빈손」귀성 죄송합니다』…IMF여파 선물 소홀

  • 입력 1998년 1월 23일 19시 59분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고향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마저 얼어붙었다.

설 연휴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선물을 부치기 위해 북적거리던 각 우체국 소포 접수창구가 한산하고 고향에 가는 사람들도 ‘빈손’으로 가겠다는 경우가 늘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 중부우체국. 짐꾸러미를 들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가끔 한 두명 보이기는 하지만 선물용 꾸러미는 아니다.

설날에 맞춰 안전하게 도착하려면 24일 이전에 소포를 부쳐야 하지만 손님이 가장 많다는 오후3,4시에도 창구가 썰렁하다.

구로우체국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명절에도 산업현장을 지키느라 고향에 가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노임을 쪼개 선물을 부치느라 해마다 북새통을 이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구로공단 우체국의 한 직원은 “전체적으로 우편물 접수량이 40% 이상 격감했다”며 “정리해고를 당하거나 직장이 폐쇄된 데 따른 여파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설날 7천여건의 소포가 접수됐던 광화문우체국의 경우 올해는 5천여건으로 줄었다. 그나마 기업에서 거래처로 보내는 대량 발송품목이 대부분으로 부모에게 보내는 선물은 거의 없는 실정.

광화문우체국의 한 직원은 “귀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고향에 선물을 보내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해 특별판매기간을 정하고 준비를 갖췄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고 말했다.

고향에 가는 직장인들도 ‘빈손 귀향’이 많다. 노동부에 따르면 설날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는 회사가 절반에 불과하고 귀향 선물로 마련해주던 참기름 식용유 등 선물세트마저 주지 않는 회사가 많기 때문.

고향이 전북 부안인 회사원 정모씨(33·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귀향해 따뜻한 마음만 전하고 와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나마 고객이 약간 늘어난 곳은 우체국이 주문을 받아 현지에 물건을 보내주는 ‘우편주문상품’코너. 상품값은 대부분 10만원 이하다.

광화문우체국의 경우 지난해 설날 직전 하루 평균 1백건 정도의 우편주문을 접수했지만 올해는 1백50∼2백건을 받고 있다.

〈하태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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