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원 서른고개 오뚝이 「연기 외길」…캐스팅 제의없어

  • 입력 1997년 12월 8일 20시 28분


열여섯살 때 영화 「땡볕」으로 대종상과 아시아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열여덟살 때 뺑소니 트럭에 교통사고. 대리석처럼 곱던 얼굴을 다쳤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야! 남한테 못한 일 한 적도 없는데…난 억울해…억울해』 20대를 그 분함으로 다 보냈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하면서도 주기적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몇차례의 수술. 아직도 울퉁불퉁한 한쪽 뺨… 그리고 서른살. 조용원이 자신의 이름을 딴 극단 「원」을 차리고 뮤지컬 「101 1004(백일 천사·百日天使)」의 제작 주연에 나섰다. 일본에서 돌아와 지금까지 번 돈 1억7천만원에 집판 돈 1억원을 보태 만든 뮤지컬. 엄마와 동생은 조용원 때문에 원룸 아파트로 옮겨앉았다. 『국제통화기구(IMF)사태가 터져 달러빚도 얻기 힘들다. 제작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닌 것 같다』면서도 공연을 앞둔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왜 그 힘든 일을 사서 하는 걸까.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예닐곱개 대학에서 강의요청이 쏟아져 도망다닐 정도라면서. 『난 오기로 연기를 해요. 나를 이렇게 만든, 신(神)에 대한 오기죠. 배우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겐 그게 불가능하거든요』 일본에서 씨름선수 지요노 후지(千代富士)에 대한 TV프로를 본 적이 있다. 한쪽 팔로 쌀 두가마니를 드는 장사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팔에 기형이 나타났다. 의사도 포기했다. 그런데 그는 혼자서 묵묵히 팔운동을 해낸 끝에 스스로 병을 고쳤다. 그것을 보고 조용원은 울었다. 「내가 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연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후려쳤다. 그래서 귀국을 했으나 캐스팅해주는 영화사가 없었다. 여전히 예쁜 얼굴로 시집가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스스로 용납되지가 않았다. 차라리 자신이 조용원을 캐스팅하는 제작자가 되기로 하고 극단을 만들었다. 첫작품으로 뮤지컬을 고른 것은 영화와 뮤지컬이 여러모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끊지 못하는 영화에 대한 그리움. 「101 1004」는 경영난으로 폐관을 앞둔 극장에서 마지막 연극공연을 하는 것이 중심 줄거리다.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죽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뭘까. 역시 연기가 아닐까』하는 조용원의 숱한 고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전직 건달이 세운 오토바이 퀵서비스업체가 나오고 천사복장으로 은행을 터는 강도와 경찰이 출몰하는 등 구성도 튼실하다. 록 랩 발라드 트로트가 망라된 음악도 있다. 조용원이 맡은 역은 백치처럼 순수한 고아처녀. 『천사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내면의 소리를 상징해요. 관객들도, 나도 연극 속의 천사와 손을 잡았으면 좋겠어요』 뮤지컬 「블루 사이공」을 만든 권호성이 음악과 작곡을 맡았다. 김효정 변우민 윤현숙 박정 등 출연. 12∼21일 평일 오후4시 7시반, 토일 오후3시 6시(첫날 낮공연없음)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02―517―7607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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