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유년기의 아이들은 현실 속에 섞여 있는 순정과 비정, 행복과 불행 같은 삶의 본질적 체험들을 저나름의 직관으로 겪고 깨닫는다. 어린이를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부옇게 흐린 삶을 투명하게 비쳐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네살과 열한살 어리디 어린 소녀의 열연으로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스크린에 쏘아보내는 두 편의 작품이 11월초 나란히 개봉된다. 지난해 베네치아 피렌체 상파울루 영화제를 휩쓴 프랑스 영화 「뽀네트」와 칸영화제의 시선을 한데 모은 미국 영화 「돈 크라이 마미」가 그것이다.
「뽀네트」는 교통사고로 갑자기 숨진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소녀 뽀네트의 순례를 그렸다. 네살 소녀역의 빅투아르 티비졸은 영화에서처럼 실제에서도 늘 인형 요요를 안고 다닌다. 지난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사상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영화 「도쿄 이야기」가 일본인의 다다미 생활을 잡아내기 위해 카메라 다리를 자른 「다다미 쇼트」를 보여줬다면 「뽀네트」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제작진이 무릎으로 기어다닌 「뽀네트 쇼트」를 보여준다.
『난 독신녀가 좋아. 아이들 하고만 사는 여자가 독신녀래』 『걘 사랑을 좋아하지 않나봐. 우리 아빠처럼』 툭툭 던지며 정곡을 찌르는 아이들의 대화는 감독 자크 드와이옹이 1만5천여명의 어린이들과 어울린 끝에 잡아낸 결실이다.
뽀네트는 엄마와의 재회를 위해 오물오물 주문을 읊조리고, 백년을 산 노인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삶과 죽음, 성서와 부활이 무엇인지조차 알 길 없는 뺨 붉은 꼬마소녀가 그늘진 벽에 이마 맞대고 눈물의 기도를 올리는 화면은 생과 사, 가족과 어머니의 의미를 단숨에 터뜨리는 압권이다.
「돈 크라이 마미」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여배우 안젤리카 휴스턴의 감독 데뷔작. 풍파 많은 미국 가정의 불행이 오랜 고질임에 주목한 그녀는 반세기전의 불행한 가정을 스크린에 띄운다.
세번째 결혼한 엄마, 새 아빠의 짐승 같은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 소녀 본. 3천여명 가운데서 뽑힌 본역의 열한살 소녀 지나 말론 역시 타고난 배우다.
역시 연기파 여배우인 제니퍼 제이슨 리는 갈 곳 없는 딸에게가 아니라 포악무도하고 무능력한 새 남편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모순된 성격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원제는 「캐롤라이나의 천둥 벌거숭이」. 천갈래 만갈래 찢겨 이미 동심의 꽃길을 걸어갈 운명이 아님을 깨달은 소녀가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이다. 흥건히 고였다 송진처럼 흐르는 눈물에는 하늘처럼 어진 소녀의 조숙한 결의가 빛난다. 『이제 어머니를 이해해. 나는 캐롤라이나의 천둥벌거숭이, 그렇게 내 삶을 살아갈거야』
이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독백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직관과 순정의 힘으로 세상을 파악한다. 티비졸은 연기 도중 자신과 뽀네트를 결코 혼동하지 않았다. 그저 『뽀네트인 척했을 뿐』이라는 당돌한 대답. 아이들은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권기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