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수」가 조금씩 넓어진다 싶던 이마가 손바닥 하나로 더이상 가려지지 않음을 확인하는 날. 머리손질을 끝낸 이발사가 『감쪽같죠』라며 뒤통수에 손거울을 들이대는 순간. 「머리숱이 귀한」 남성들은 탈모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L그룹의 정과장(42)은 『「머리문제」로 들인 노력과 돈을 승진에 투자했다면 지금쯤 그룹내 최연소 이사 정도는 됐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했고 30대 초반에는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고등학생이 나타났다. 30대 중반에는 직장상사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술집아가씨가 자신에게 먼저 술을 따라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솔잎이 달린 소나무 가지로 탈모부위를 자극하면 좋다는 말에 새벽잠을 설쳐가며 약수터에 가서 쓸만한 솔가지를 찾았다. 어디선가 검정콩이 좋다는 말을 듣고온 아내가 콩밥만 해대는 바람에 엉뚱하게 「콩밥신세」도졌다.중국산발모제인「101」도 효과가 없었다. 그는 요즘 6백만원 이상 든다는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 대머리의 설움은 정신적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 20대 후반 심한 탈모를 겪은 젊은이들은 입사면접 때 「늙어 보인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결혼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사승진을 앞두고 『외모에 신경쓰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충고를 받고 가발을 쓰게 된 대기업의 부장도 있다.
서울 C여중 수학교사 박모씨(45)도 벗어진 머리로 마음고생을 하기로는 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음을 「자부」한다. 교사생활 17년 동안 얻은 별명만 십여 가지. 「버섯동자」 「떠오르는 태양」 「민둥산」 「달마대사」 「빛나리」 「가로등」….
싱싱한 계란노른자로 1년 넘게 머리도 감아봤다. 발모촉진에 효과가 있다는 다시마진액도 먹어 봤다. 간신히 걸쳐놓은 머리카락이 식사 도중 쏟아져 내릴까봐 아침마다 스프레이로 머리를 고정해야 했다. 얼마전 사기극으로 판명된 「기적의 발모제」가 처음 언론에 보도됐을 때의 감격이란…. 그는 결국 지난해 학교를 옮기면서 접착식 부분가발을 맞추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40대 남성의 대머리 비율이 30%가 넘는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대머리는 흔하다. 국산과 불법수입품을 포함한 발모제와 탈모억지제 시장은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젊음을 되찾아준다」 「감쪽같이 숨겨준다」고 광고하는 부분가발업체 또는 모발관리 전문업체도 성업중이다. 종합병원의 피부과에는 엄청난 수술비에도 두피이식수술을 받겠다는 남성들이 줄을 설 정도.
대머리 남성들 중에는 일찍부터 체념하거나 대범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머리숱이 적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사실」을 떠올리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접착식부분가발전문업체인 「밀란」의 윤호성실장은 『이 계통의 업체들은 광고를 하거나 판촉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고객들의 화를 돋울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광고나 카탈로그의 모델로 나와달라고 부탁하면 『돈도 싫으니 모른 체 해 달라』는 답변을 듣기 일쑤. 이 때문에 대머리 모델의 「머리값」은 상당히 고액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중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