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대학 세계여행/상하이-홍콩]국산車보니 『뿌듯』

  • 입력 1997년 9월 30일 08시 51분


누런 황토빛 강물이 넘실거리는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 뱃머리가 닿은 곳이 상하이(上海). 상하이 부두에 내리자마자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나라 현대자동차의 시멘트 탱크로리와 대우자동차의 에스페로 승용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커다란 땅덩어리에서 우리의 손때가 묻어난 우리 상품을 보니 여간 뿌듯한 게 아니었다. 배에서 내려 첫 발을 디딘 상하이의 거리는 TV를 통해서 본 우리나라의 70년대 초반을 연상시켰다. 털털거리는 시내버스와 외제 승용차, 외국상표를 선전하는 대형 광고판…. 거리에서 눈에 띄는 외제 승용차 중 70%가량은 독일의 폴크스바겐과 일본의 다이하쓰였다. 중국 사람들은 대륙의 기질을 타고 난 때문인지 자기주장이 강하다. 따라서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좀처럼 자기들만의 줏대를 굽히지 않는다. 이는 펩시콜라를 백사가구(百事可口), 스프라이트를 설벽(雪碧)으로 바꿔 부르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상하이에서의 첫날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어린이 특수예술학교였다. 발레 고전악기 연주 노래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대상은 5세부터 12세까지. 이들은 우리를 위해 마련한 특별공연에서 훌륭한 무용과 노래솜씨를 뽐냈을 뿐 아니라 무대위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영어로 인사하는 등 무대매너 또한 만점이었다. 둘째 날 배에서 동양음악을 가르치는 일본인 다라다교수와 함께 찾아간 곳이 상하이 종합병원과 국립음악학교. 병원은 시설도 엉망이고 위생처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첫 인상부터 불결했다.경제발전이 처진 나라에서는 함부로 아파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음악학교는 밖에서 바라본 건물모양새는 볼품이 없었지만 이곳 최고의 음악학교답게 학생들의 실력은 음악에 대한 문외한이 듣기에도 수준급이었다. 음악학교 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전악기 박물관 견학. 다양한 소재들로 만들어진 당나라 원나라, 그리고 명청 시대 악기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이름은 잘 모르지만 뱀가죽이나 거북껍데기로 만들어진 악기들이 이색적이었다. 그날 저녁.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을 섞어 길을 물어가며 버스를 타고 극장을 찾아갔다. 매표소 앞을 경찰이 지키고 있었으나 바로 옆에서는 경찰이 보란 듯 암표 장사들이 맹활약중이었다. 극장안의 풍경도 볼 만했다. 대부분이 남녀커플이었는데 쌍쌍이 붙어앉아 영화관람보다는 감각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데 더 열중하고 있었다. 극장이 문화공간이 아닌 젊은이들의 최고의 데이트 장소인 셈이었다. 하루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외국 학생들에게 입학의 문을 열어 놓고 외국 대학과의 교류도 많다는 상하이의 한 유명대학을 찾아갔다. 북한 유학생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북한 학생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최근 북한이 외국과 접촉이 많은 이 대학의 유학생들을 모두 철수시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뜻밖에 이곳에 유학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상하이를 떠나 닻을 내린 곳이 홍콩. 이곳에서도 「우리의 냄새」를 맡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울식당」 「부산식당」 「한국인삼」 등 음식점과 건강원 간판이 쉽게 눈에 띄었다. 홍콩은 실업률이 제로에 가까운 활기찬 도시였다. 홍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중국본토인 영국인 대만인 일본인 베트남인 필리핀인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 만큼 그들의 전통적인 풍습 또한 다양해 홍콩의 주민들은 여러 가지 문화를 한꺼번에 접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홍콩에서의 마지막 날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홍콩 야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빅토리아 피크」로 향했다. 정상에 마련된 전망대를 통해 홍콩시내 건물의 숲을 내려다 보면서 서울의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과 63빌딩 잠실 야구장의 불빛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게 훨씬 더 낭만스러웠다는 생각과 함께…. <문형진씨 참가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