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이미 잠들고 난 깜깜한 방에서 무대 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나만의 세계」를 그려보는 주부들이 있다.
서울강북지역사회교육협의회의 아마추어 주부연극반인 「새이웃 주부극회」. 연극 속에서 새로운 모습의 나를 찾으려는 주부들이 모여 연극을 시작한 지 벌써 13년째다.
연습실과 무대에서 땀을 쏟으며 10년 세월을 함께 넘어선 40, 50대 주부 예닐곱명이 현회원. 매주 월요일 종로구 세종로의 강북협의회 강의실에서 이종용목사의 지도로 연극연습을 한다. 요즘은 가을에 공연할 「에바 스미스의 죽음」 대본분석이 한창이다.
그동안 현대예술극장 등을 빌려 무대에 올린 작품만도 「아내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 「배비장전」 「원고지」 등 20여편. 이목사가 연출과 무대장치 등을 도맡아 하고 주부들이 배역을 나누어 연기를 한다.
『처음엔 안 좋은 배역을 맡으면 울기도 하고 좀더 예쁘게 보이려고 분장도 살살 바꾸곤 했지만 지금은 연극 자체를 즐겨요. 여럿이 함께 지내면서 이기적인 성격도 많이 둥글어졌구요』
10년째 주부극회에 몸담고 있는 김숙경씨(45·서울 송파구 송파동)는 무대가 「따뜻한 목욕물」처럼 편안하다고 말한다. 창단멤버인 박양기씨(53·서울 용산구 한남동)도 『다양한 인간유형을 표현해볼 수 있다는 것이 연극의 큰 매력』이라며 『내 생활이 있으니 남편생활에 대해 불필요한 간섭을 안 하게 되어 좋더라』고 말했다.
인생경험이 많은 중년주부들이라 작품을 날카롭게 분석해낸다는 것이 이목사의 평. 연극에 대한 이해없이 「무대의 화려함」에만 도취되어 찾아온 주부들은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떠났다.
대사 암기가 가장 큰 어려움. 설거지할 때나 등산할 때나 이어폰을 꽂은 채로 중얼중얼 대사를 왼다. 엄마가 연극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상대역을 맡아 연습을 돕기도 한다. 간혹 공연 중에 대사를 잊어버릴 때는 주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넘긴다.
회장 이연호씨(59·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는 『늘 동경만 해오다 더 늙으면 못 할까봐 나이 오십에 연극을 시작했다』며 『애들 잘 키우고 가정도 충실히 꾸려가야 연극도 잘할 수 있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틈틈이 연극이론도 공부하면서 배우뿐 아니라 무대장치 조명 음향 등 연극 전체를 보는 눈을 키워 초중학교에서 연극지도를 하는 주부들도 여럿 있다.
앞으로는 주부들을 모아놓고 자녀교육문제를 담은 좋은 내용의 창작극을 공연하는 것이 꿈. 이들은 「한글을 큰소리로 읽을 줄만 알면 누구든 연극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윤경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