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大 퇴임 박서보씨 『화가에게 「停年」은 없다』

  • 입력 1997년 3월 31일 09시 33분


[송영언 기자] 서양화가 박서보씨(66)는 지난달 35년간 재직해온 홍익대를 정년퇴직했다. 그러나 그에게 퇴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작가의 99%는 나이먹으면 기가 빠지고 작품도 나른해 집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1%의 작가가 될 것입니다』 그는 최근 서울 성산동에 새로운 작업실을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임대한 작업실을 써 왔지만 이번에는 자신소유의 작업실을 직접 설계해 만들었다. 『말하자면 새로운 출발의 다짐입니다. 그곳이 앞으로 남은 내 미술인생을 꽃피우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는 오는 4월15일 이 작업실의 문을 열면서 많은 사람을 초대한다. 4월1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02―734―6111)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도 이같은 의욕을 담고 있다. 그는 『내용적으로는 퇴임을 기념하는 전시회지만 작품상으로는 내가 생각하는 것의 가장 극점에 있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의 「묘법(描法)」연작중 최근에 제작된 20여점의 대작들이 선보인다. 2백∼5백호가 10여점, 1백30호가 10여점이다. 그의 작품은 캔버스위에 한지를 여러차례 붙이고 칠해서 긁어내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 작품속에는 수십개의 수직선이 촘촘하게 밀집돼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한지에 스며든 안료의 수분이 채 가시기 전에 그 위에 가해지는 드로잉은 보다 촘촘한 단위들로 이루어지면서 서로 엇갈리는 운필들로 인해 화면에 잔잔하지만 풍부한 변화를 유도해 낸다』고 말한다. 그는 작품을 빚기 위해 똑같은 행위를 수없이 반복한다. 『스님들이목탁을두드리는 것처럼 같은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다보면 모든것이 비워진 상태가 됩니다. 작가가 작품을빚는 것이 아니라반복된 행위가 저절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요』 그는 아침 10시반에서 다음날 새벽까지 하루에 16시간 정도 작업을 한다. 이런 식으로 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보름정도가 걸린다. 그는 이를 『작품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평론가들은 이같은 치열함을 「장인정신」이라 표현한다. 『아이디어 하나 가지고 모든 것을 하려는 것이 요즘 젊은 작가들입니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는 금방 유행으로 번지고 이는 결국 작품을 오염시키고 맙니다』 그는 오는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10월 프랑스 파리, 11월 일본 도쿄에서 잇따라 전시회를 연다. 그에겐 정년퇴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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