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美錫 기자] 주변에서 구김살없이 밝고 명랑한 성품으로 칭찬을 받곤 하는 소원(서울 강남구 구룡중2년)이와 준오(개일초등교 4년)남매. 이들은 친구들과 대화할 때 만화영화나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면 무슨 얘긴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평일엔 아예 텔레비전을 안보고 주말에나 가끔 TV를 시청하기 때문이다. 책도 보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소원이네의 이런 전통은 제법 역사가 깊다. 아빠(윤제현 쌍용자원개발팀장)의 직장관계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5년간 사는 동안 TV안보는 것이 생활습관이 돼버렸다. 가정교육이 엄격한 독일에선 8시가 아이들 취침시간. 부모가 밤늦게까지 아이들이 텔레비전앞에 붙어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 노효정씨(42·서울 강남구 개포동 경남아파트)는 『1년반전 귀국해보니 다른 집 아이들이 마치 중독된 것처럼 텔레비전에만 매달려 지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며 『사춘기에 접어든 소원이도 가족이 합의한 원칙이란 점에서 잘 따라주고 있으며 준오는 TV를 안보니까 하루가 남들보다 긴 것 같다며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남매는 독일에 있을 때 40여개국 아이들이 모인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다양한 문화와 접했다. 영 독 불어가 유창한 것은 물론 전화 한통을 해도 엄마의 양해를 구하는 소원이의 깍듯한 매너, 다섯살때 혼자 비행기를 타고 서울의 할머니를 찾아온 준오의 의젓함도 그 시절의 소중한 수확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고생은 서울에서 시작됐다. 『또래로부터 「영어만 잘하면 다냐」는 식의 괜한 질시를 당하거나 뭐든지 한가지만 잘하면 인정받는 외국학교와 달리 성적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분위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당장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이들은 적극적으로 아이들 생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엄마는 영어 명예교사로 남매의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아이와 더많이 교감하려고 애쓴다. 아빠 역할도 크다. 우리말 이해가 서툴러 처지는 학과목은 함께 머리싸매고 공부하고 아이들 고민에 귀기울여 들어준다.
성격은 엉망이어도 공부잘하는 것만으로 유세부리는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될까. 이들 부부는 어디서 무얼하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 남을 배려하는 「된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바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