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씨「타인에게 말걸기」출간…「사랑의 상처」그려

  • 입력 1996년 12월 23일 21시 00분


「鄭恩玲기자」 소설가 은희경씨가 첫 창작집 「타인에게 말걸기」(문학동네 간)를 펴냈다.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 당선으로 데뷔한 은씨는 「작가신고식」이라 할 수 있는 창작집출간보다 장편소설인 「새의 선물」을 먼저 펴내는 독특한 경로를 거쳤다. 첫 창작집에 담긴 은씨의 작품 속에는 사랑에 상처받은 여자들이 자주 화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사랑의 상처가 「신파」로 흐르지 않는 것은 작가가 그를 통해 인간 내면의 이기심과 강한 겉모습 안에 숨겨둔 허약한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속 화자들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인물뿐 아니라 자신의 불운에 대해서도 「관찰자」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현실의 우울한 이면을 덧칠없이 그려낸다. 「그녀의 세번째 남자」에서 주인공인 노처녀 커리어우먼은 「영원」을 약속하며 자신에게 금반지를 끼워주었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배신을 겪은 후에도 8년간이나 그의 숨겨진 연인으로 살아간다. 그와의 지리한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불현듯 직장을 팽개치고 여행을 떠났던 그녀는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했었지. 그것이 사랑의 본색일 뿐인데…』라고 반추한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에서 남자와의 결별을 맞게 되는 여주인공은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랑이 진정한 것이냐 아니냐는 그것이 시험대에 올라가지 않았을 때까지 뿐이야. 시험대에서 분석하면 모든 사랑은 다 가짜로 밝혀지니까』 「연미와 유미」에서 의사부인으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불륜에 빠져있는 언니 연미는 『혼자가 될 수 있다면 결혼은 행복한 것』이라고 충고한다. 평론가 황종연씨는 『은씨의 작품들은 사람 사이의 끈끈한 유대가 사랑과 결혼이라는 가장 친밀하고 사사로운 영역에서 조차 사라졌음을 드러내고 있다』며 『우리 시대 개인들이 처한 실존적 정황에 환상없이 대면하려는 냉철한 이지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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