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K-기업 글로벌 진출 숨은 조력자… 한국무역보험공사-BNP파리바

  • 동아경제
  • 입력 2025년 12월 5일 15시 07분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본사에서 정재용 한국무역보험공사 부사장(오른쪽)과 김태균 BNP파리바 수출금융 아시아헤드(총괄본부장)이 동아닷컴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제공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본사에서 정재용 한국무역보험공사 부사장(오른쪽)과 김태균 BNP파리바 수출금융 아시아헤드(총괄본부장)이 동아닷컴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제공
글로벌 경기 둔화와 지정학 리스크 확대로 기업의 해외사업 위험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와 글로벌 금융사 BNP파리바가 국내 기업의 해외 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무보와 BNP파리바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대표적 수출신용기관(이하 ECA)-글로벌 상업은행 파트너십으로 꼽힌다. 유럽계 금융 대표 주자인 BNP파리바는 한국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서 합리적인 자금 조달을 진행하고, 무보는 세계 최고 수준의 ECA 금융 경쟁력으로 기업들의 안전한 연결고리 역할을 강화해왔다.

최근 양측은 중소·중견기업 금융 지원 및 미국·유럽 중심의 투자환경 변화, 원전·방산·데이터센터 등 신(新)산업 프로젝트 확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 본사에서 정재용 한국무역보험공사 부사장과 김태균 BNP파리바 수출금융 아시아헤드(총괄본부장)을 만나 올해 성과부터 내년 전망을 들어봤다.

-무보와 BNP파라바 인연은 언제부터 이어졌나.

▽김태균 총괄본부장=무보와의 협력은 BNP파리바가 2000년 파리국립은행(BNP)과 파리바 합병으로 새 출발한 때부터다. 사실상 무보와 가장 오랜 기간 일해 온 외국계 상업은행이다. 전기차·에너지·조선·발전 등 산업 지형이 바뀌는 25년 동안 줄 곧 관계를 유지해왔다.

▽정재용 부사장=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기업이 글로벌 프로젝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그 초기에 BNP파리바가 적극적으로 함께했다. 특히 장기 구조화 금융에서 BNP파리바의 경험은 무보에도 큰 도움이 됐다.

-최근 무보와 함께 한 대표적인 수출 금융 프로젝트는.

▽정 부사장=두 사업을 꼽으라고 하면 미국 테네시 양극재 공장과 호주 맥킨타이어 풍력단지다. 미국 양극재 공장은 총 17억 달러 투자에 무보가 10억 달러를 지원했고, BNP파리바가 주간사로 참여했다. 이 프로젝트가 중요했던 건 단순히 양극재 공장을 짓는 걸 넘어 중소·중견 설비업체까지 함께 수출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배터리 밸류체인의 선순환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고 평가받는다.

▽김 총괄본부장=이 프로젝트는 K-배터리 산업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였다. 그리고 호주 맥킨타이어 풍력발전 프로젝트도 좋은 성과로 여겨진다. 여기서 무보가 3억1000만 달러를 지원했는데, BNP파리바·ANZ·하나은행(호주) 등이 함께 대주단으로 참여했다. 한국 기업이 해외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존재감을 보여준 사업이다.

-에너지 전환·미래산업 시대, 새로운 협력 모델은.

▽정 부사장=가장 큰 이슈는 미국의 대규모 제조업 리쇼어링(해외로 이전했던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대미 관세협상 결과에 따른 총 지원규모 3,500억 달러 중, 1,500억 달러가 사실상 조선·방산 등 한국 강점 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구조다. 자동차·철강 대기업의 북미 투자도 논의 중이며 원전도 유럽 여러 국가들이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면서 한국 기업 참여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김 총괄본부장=과거에는 오일·가스·화력발전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배터리·방산·조선·원전으로 산업 축이 이동했다. 특히 2차전지는 최근 한 차례 정점을 지나 일단락됐다고 보지만 여전히 핵심 산업이다. 또 무보는 지난해 아프리카 개발은행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올해는 미주개발은행과도 협업을 확대해 파나마 도시철도 프로젝트를 공동 지원하는 등 신흥국 프로젝트 발굴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여러 기관에 분산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 투자가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핵심 부품을 공급하며 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만큼, 금융에서도 지원 여력을 찾고 있다.

-신재생 분야에서 협업이 활발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김 총괄본부장=BNP파리바는 글로벌 은행 중에서도 저탄소·친환경 프로젝트 지원을 전략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한국 기업들도 신재생·청정 에너지 분야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무보와 BNP파리바의 역할이 맞물렸다.

▽정 부사장=신재생 프로젝트는 초기 리스크가 커서 금융기관이 쉽게 참여하기 어렵다. 그래서 무보의 보증이 핵심 안전장치가 되고, BNP파리바의 글로벌 구조화 능력이 조달을 견인한다. 두 기관의 협업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산업적 배경이 있다.

-금융 구조도 변화하고 있다고 들었다.

▽김 총괄본부장=최근에는 PPL(선금융 후발주) 모델이 확대되는 추세다. 루마니아 방산 프로젝트와 같이 우리 기업 프로젝트 발주 및 제품 구매를 조건으로 한 해외 발주처 대상 금융 제공은 수출 증진에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된다. 무보 보증으로 인해 수출기업이 부담하는 금리 역시 개선되는 효과가 발생하므로 금융시장 내 PPL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정 부사장=과거에는 바이어가 발주를 결정하면 금융기관이 뒤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에너지·배터리·방산 프로젝트처럼 시장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는 금융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무보는 PPL을 통해 ‘금융이 사업을 여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BNP파리바를 이용할 때 가장 큰 이점은.

▽김 총괄본부장=현지화된 글로벌 금융 혜택을 볼 수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가장 부담스러운 요소 중 하나가 환율 변동성과 높은 조달 금리다. BNP파리바는 유럽과 북미, 동남아, 중동 등 주요 시장에 깊숙이 뿌리내린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프로젝트 현지 통화로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이 방식은 자연스럽게 환리스크를 크게 줄여주고, 한국에서 외화 조달을 할 때보다 금리도 낮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구조화 금융 역량이다.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금융 구조가 복잡해지는데, BNP파리바는 글로벌 프로젝트파이낸스(PF) 분야에서 오랜 트랙 레코드가 있어 주간사로서 효율적 금융 구조 설계가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무보와의 협력은 각 프로젝트의 신용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글로벌 변동성이 커졌는데 가장 우려하는 리스크는 무엇인가.
▽김 총괄본부장=현재 특정 산업에 대한 즉각적인 위기로 보이는 리스크는 없다. 관세 문제도 결국 산업이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고, 전기차·배터리 공급망도 어려운 구간을 넘기도록 금융이 같이 움직이고 있다. 중요한 건 장기 금융은 10년, 15년짜리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변동성은 필연적이다. 저희는 프로젝트가 변동성의 끝에서 최악의 상황을 견뎌내고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금융의 구조를 설계한다.

▽정 부사장=금융이 제일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이다. 변동성은 견딜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견딜 수 없다. 하지만 내년을 놓고 보면 올해보다는 회색지대가 분명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간 관세 협상도 타결되고, 시장도 올해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도 조금씩 안정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미 관세협상 타결 이후 무보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 부사장=미국 관세부과 회피를 위한 현지 투자 수요가 급증해 무보는 대미 투자금융 지원을 대폭 강화한 바 있다. 올해 10월까지 미국 내 공장 설립 등 해외투자자금 대출을 약 7조원 규모로 지원했다. 관세 이슈로 현지 공급망 차질을 겪는 중소·중견기업에는 최대 5년 운영자금 특별지원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향후 한·미 조선협력 투자 등 대규모 조선·인프라 투자에도 총력 대응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지원할 계획이다.

-국내 은행들의 글로벌 프로젝트 참여 늘리는 방안은.

▽정 부사장=현재 글로벌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조달금리가 낮은 해외 은행들이 주도한다. 국내 은행이 들어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금리 경쟁력이 떨어지고, ECA 금융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NP파리바 같은 유럽계 은행들은 수십 년간 무보 보증자산을 ‘0% 위험자산’으로 처리하며 적극적으로 취급해 왔다. 그래서 금리를 낮출 수 있고, 거래구조도 잘 이해한다.

반면 국내은행은 아직 해외 프로젝트 경험이 적고, 조달금리도 상대적으로 높아 ‘역마진’이 발생하면 참여가 어렵다. 무보는 △정부 채널을 통한 국내은행의 해외금융 확대 독려 △국내 은행의 보증 취급 경험 확대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K-파이낸싱 구조 마련 등을 추진 중이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자리 잡으면 한국 중소·중견 장비업체들이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에 훨씬 쉽게 따라갈 수 있다.

-내년 계획은.

▽김 총괄본부장=대기업뿐 아니라 대기업 밸류체인을 따라 해외에 진출하는 중견·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주요 산업의 공급망을 분석하며 어느 기업이 금융지원을 필요로 하는지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ECA 금융뿐 아니라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해 한국 기업의 글로벌 확장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정 부사장=자국 우선주의 등 보호무역 기조 강화, 글로벌 변동성 심화 등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도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기업 덕분에 한국 경제가 유지되고 있다. 무보는 앞으로도 전략 발주처 금융, 세계은행과 같은 다자간 개발은행과의 협력, 시장 다변화 등을 통해 우리 기업과 국내 은행의 글로벌 도약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특히, 국내은행의 글로벌 중장기금융 참여를 견인해 생산적 금융 범주를 해외로 확대하는데 일조할 계획이다. 또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가장 가까이서 듣고 해결하는 기관이 될 것이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1992년 설립된 우리나라 대표 정책금융 기관이다. 바이어가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을 때 대신 지급해주는 단기수출보험부터, 플랜트·인프라 같은 대형 해외 프로젝트에 장기 금융을 지원하는 중장기성 보험까지 모두 담당한다. 또 중소 ·중견기업이 수출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운영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신용보증 역할도 수행 중이다. 금년 무역보험 지원은 전년 237조원 대비 10% 증가한 261조원으로 역대 최고인 2023년 245조원을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새로운 생산적 금융 협력모델을 통해 중소·중견기업 지원 100조, 이용기업 5만개 시대를 열어 올해 사상 첫 7000억 달러 수출액 달성이 유력한 가운데 무보가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NP파리바는 64개국에서 약 17만8000명이 근무하는 유럽 최대·세계적 종합금융그룹이다. 한국에서는 1976년 진출해 기업금융, 자본시장, 보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4년 기준 그룹 매출은 약 500억 유로, 순이익은 100억 유로를 달성했다. 한국의 대형 프로젝트 금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