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국민은행의 '고객 포기'

  • 입력 2002년 11월 28일 19시 02분


카드빚 증가와 수익성 악화로 고민하던 은행과 카드사들이 부실을 줄이기 위해 일부 고객과 거래를 끊는 ‘극약 처방’을 쓰고 있다.

부실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는 고객에게는 아예 문을 걸어 잠그겠다는 것. 문제는 금융회사들의 이런 무차별적인 대책으로 말미암아 상환능력이 충분한 선의의 고객들까지 막대한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금융회사인 국민은행은 3군데 이상에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은 고객에게는 카드 회원자격을 주지 않기로 했다. 현재 회원 가운데 15만∼20만명은 카드이용 한도가 당장 ‘0원’으로 조정된다. 신규회원 모집과 관련해서는 더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다. 자본금 3억원 미만이나 연간 매출 3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 근로자, 소득증명을 하지 못하는 자영업자, 일시 고용상태인 계약직 급여 소득자들은 아예 국민은행 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도록 했다.

이들 가운데 실제 부실 위험을 안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국민은행도 모른다. 소매금융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국민은행이 신용리스크 관리를 포기하고 부담을 고객에게 떠넘긴 셈이다.

국민은행이 선도은행이라는 점에서 이런 관행은 순식간에 다른 금융기관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카드사는 이미 거래를 끊을 회원을 고르는 작업에 들어갔다.

별도법인인 국민카드는 60일 이상 연체한 40여만명에 대해 이용한도를 0원으로 조정해 사실상 회원자격을 박탈할 방침이다. LG카드도 하루 이상 카드대금을 연체한 고객 가운데 ‘도움이 안 되는’ 회원을 골라내 카드 사용을 금지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용한도를 ‘0원’으로 만드는 것은 ‘회원의 동의가 없으면 회원자격을 박탈하지 못한다’는 약관 때문에 편법으로 회원 자격을 빼앗는 것.

과도하게 늘어난 가계대출이 금융회사뿐 아니라 나라 경제에 주는 부담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편의주의적 영업행태 때문에 상환능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카드 이용을 제한당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점에 대해 은행이나 카드사들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신치영 경제부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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