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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7월 12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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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사상-김원우의 ‘객수산록(客愁散錄)’
한국 소설계의 뚜렷한 개성 가운데 하나인 김원우 문학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놀라운 투시력으로 한국 사회와 우리네 삶의 저 깊은 곳까지 꿰뚫어 열어 보이며, 치밀한 직조력으로 빈틈없는 한 세계를 엮어놓았으며 정체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원우 문학을 이끄는 것은 현상의 안쪽을 파헤쳐 이해하고자 하는 앎의 욕망이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읽고 그 안쪽에 깃들인 숨은 의미를 들추어내고 명명(命名)하고자 하는 앎의 욕망이 김원우 문학을 일이관지 하나로 꿰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앎의 욕망을 실행하는 것은 김원우 문학을 김원우 문학이게 하는 지적 언어다. 탐구적이고 비평적이며 자기성찰적인 김원우 문학의 언어와 그 운용방식은 말랑말랑한 감성의 언어, 우직한 사실(寫實)의 언어가 지배적인 우리 소설에서는 대단히 낯선 것인데, 깊이 사고하는 독서를 요구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대체로 기피한다. 우리 독자들이 감성적인 작품, 영웅적 인물의 거침없는 자기실현의 행로를 쫓아가는 무협지적 작품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일반적인 독서 취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오연히 자기 길을 열어 나아가고 있는 김원우 문학은 한국소설과 독자들의 소설 수용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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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중단편을 엮어 놓은 ‘객수산록(客愁散錄)’은 겉으로 보아 전혀 다르지만 기실은 동질적인 여러 나그네들의 부유하는 존재성을 깊이 파헤친 작품집이다. 그 나그네들이 같은 중심을 맴도는 ‘동심원’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낮은 포복으로 산등성이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 작품의 행로는 김원우 문학이 안쪽의 본질을 겨누는 깊은 문학임을 새삼 증거한다. 소설에 그려진 이 시대의 온갖 풍속은 그러므로 풍속이되 중풍속인 것이다.
이 소설 속을 부유하는 그 동심원 그리기의 장삼이사들은 한국 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역사적 존재들이다. 그들은 중심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지향해야 할 가치로서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 지향과 그 불가능함 사이에서 우울한 비감이 피어나 안개처럼 김원우 문학을 채운다. 그러나 감원우는 그 비감에 잠기지 않고 그 반동으로 턱없는 낙관에 이끌리지도 않는다.
표제작인 ‘객수산록’의 구성축 가운데 하나는 특이하게도 백과사전이다. 다른 네 작품에는 백과사전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 안쪽에는 대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로서 ‘백과사전’이란 무형의 기호가 들어 있으니 백과사전을 책에 실린 모든 작품들의 구성축 가운데 하나라 말할 수 있다. ‘객수산록’의 주인공은 객관성과 체계성 등을 들어 백과사전을 높이 사는데, 이는 그 반대되는 것들로 뒤범벅인 한국 사회의 천박함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방식이다. 근대정신의 총화인 백과사전으로서 근대 미달 상태에 놓여 요동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비추고 재는 이 방식이 김원우 문학의 한 중심 주제인 한국 사회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탐구를 위해 고안된 것임은 물론이다.
정호웅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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