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권력형 비리’의 초라한 귀국

  • 입력 2002년 4월 3일 18시 41분


‘진승현 게이트’에서 정관계 구명 로비의 핵심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재환 전 MCI코리아 회장이 엊그제 초라한 모습으로 귀국했다. 그가 인천공항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검찰수사관에게 연행되는 광경은 ‘권력형 비리’ 연루자들의 말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눈앞의 단죄를 피해 외국으로 도망친다 해도 평안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김씨의 불안은 육신의 병으로 나타났다. ‘세계는 넓다’는 생각에 외국으로 도피한 많은 범법자들은 시간이 걸릴 뿐이지 자신들의 모험이 결국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김씨의 귀국에 따라 의혹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연한 수순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터져 나온 다른 게이트 연루자들의 ‘닮은 꼴 해외도피’도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된 오기준 신양팩토링 사장과 유조웅 동방금고 사장, ‘이용호 게이트’에 관련된 김현성 한국전자복권 사장, 윤명수 R기업 전무 등이 그들이다. 부동산 투기 등의 의혹을 사고 있는 안정남 전 국세청장과 세풍(稅風)에 연루된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도 하루빨리 귀국해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김재환씨는 스스로 돌아오는 형식을 취했지만 검찰의 노력에 의해 귀국이 성사됐다는 점에서 다른 해외도피자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로 삼을 만하다. 검찰은 김씨의 출국을 주선했던 사람을 통해 귀국을 종용하고 소재를 추적하는 등 끊임없이 압력을 가해왔다고 한다. 검찰이 해결의지가 있다면 다른 도피자들의 귀국을 위해서도 같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에 앞서 범죄인의 해외도피를 막기 위한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김씨의 경우 검찰이 뒤늦게 출국금지를 했을 뿐만 아니라 40여일이 지나서야 도피사실을 확인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제때에 출국금지 조치를 내려 권력형 비리 연루자의 해외도피를 막는 것도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