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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7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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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한 중년의 신사가 고급차 뒷좌석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차를 보나 분위기를 보나 사회적인 위치가 어느정도 돼보이는 사람이다. 창가를 무심히 내다보다가 넥타이 부대들 틈으로 웬 해괴한(?) 사람 발견.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유유히 지나가는 젊은이. 그래도 안전을 위해 갖출건 다 갖췄네. 헬멧, 무릎보호대, 장갑까지. 하지만 중년신사의 얼굴은 금새 일그러진다. '으이그...젊은 놈이 아침부터' 혀를 끌끌 차듯이. 첫 번째 카피 '넥타이는 청바지보다 우월하다'
중년신사가 당도한 곳은 사장실 앞.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인걸까. 흠흠거리며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라라..근데 책상위에 놓인 헬맷과 브레이드를 보니 심상치 않네. 사장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으아악~ 깜짝 놀라고야 만다.
출근길에서 본 그 날나리 같은 남자가 사장이었던 것! 사장 같지 않은 사장은 굳어있는 신사를 보고 싱긋, 미소 짓는다. 두 번째 카피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젊은 날나리 사장과 악수한 신사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차 싶은 마음. 민망하고 낯뜨겁고 멋적었을 것이다. KTF의 이번 광고는 '상황극'이다. 극과 극인 두 캐릭터가 등장한다. 두 남자는 나이, 스타일, 사고방식 모든 면에서 다르다. 한쪽은 번듯하고 한쪽은 정체불명이다.
평행선을 그을 것 같은 이질적인 캐릭터가 어느순간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만나는 순간 상황은 대역전. 신사의 번듯함은 판에 박힌 고정관념으로 전락하고, 젊은이의 정체불명은 창조정신으로 자리매김한다.
넥타이와 청바지, 고급차와 롤러브레이드. 우리 사회에서 은연중에 의미가 고정되어 있는 물건들. KTF는 이 고정된 상징체계를 유쾌하고 가볍게 뛰어넘는다. 넥타이와 청바지의 사회적인 간극을 좁힐 뿐 아니라 아예 없애버릴 정도다.
게다가 젊은 사장의 '미소'가 참 인상적이다. 중년신사가 그 나이 되도록 일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긴장하는 것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새로운 만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여유. 말하자면 자기 스타일대로 일을 즐긴다는 의미다. 제대로 된 보보스 족이다.
마지막에 끼어드는 안성기의 목소리 'KTF적인 생각이 대한민국을 움직입니다' 는 기업이미지를 한결 업그레이드하는 느낌이다. 자신들의 기업이 그 젊은 사장처럼 자유롭고 진취적이라는 것. 게다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가치 전복적인 자부심까지.
상황의 역전에도 불구하고 청바지가 우월하다고 하지 않는 겸손함, 그럼에도 우위를 점하는 발칙한 즐거움. 이 절묘한 균형감각이 도발적인 철학을 감싸는게 아닐까? 다음 도발도 즐겁게 기다린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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