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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1월 14일 0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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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잡아낸 ‘독수리’ 최용수(일본 제프 이치하라)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9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뽑은 데 이어 크로아티아와의 2차 평가전에서 선취골을 터뜨려 한국 최고 스트라이커로서 자존심을 되찾았기 때문.
이날 최용수의 플레이는 ‘골지역에서 받아만 먹는 선수’란 이미지를 벗어 던졌다. 김남일의 패스를 선제골로 연결한 것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
최용수는 94년에 안양 LG에 입단해 그 해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만개한 기량을 자랑했던 한국 최고의 스타. 상무 유니폼을 입었던 97년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98년 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맹활약해 한국을 가볍게 본선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정작 본선에서는 찬밥 신세로 밀렸다. 99년 초에는 잉글랜드 웨스트햄 진출마저 무산돼 정신적 상처가 더 심해졌고 결국 ‘한물갔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최용수는 올해 일본프로축구에 뛰어들어 21골을 잡아내며 다시 골잡이의 면모를 되찾았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었기에 최근 태극마크를 달고 펼치는 그의 골퍼레이드는 큰 의미가 있다.
<광주=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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