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이 수도 트리폴리에 집중되면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아성으로 꼽히는 트리폴리 주민들도 점차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이 23일 보도했다. 정부군의 통제 아래에 있는 트리폴리에선 인터넷이 차단되고 친위대와 경찰이 거리 곳곳에 배치돼 반정부 움직임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들의 눈길을 피해 익명을 전제로 서방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며 카다피에 대한 불만과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다. WSJ는 트리폴리 시민들의 여론이 △순수하게 카다피를 지지하는 세력 △카다피의 퇴진이 몰고 올 정국 불안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카다피를 인정하는 세력 △서방 공습으로 정권의 힘이 약해지길 원하는 반정부 세력 등으로 세분된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 트리폴리에 대한 다국적군의 잇단 공습으로 시민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있다면서 이 같은 사태를 야기한 책임이 카다피 정권에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는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고 용감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달 트리폴리에서 열렸던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다는 한 주민은 “서방 공습의 지원을 받아 반(反)카다피군이 서쪽으로 진격한다면 트리폴리 시민도 다시 한 번 봉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이날 “다국적군의 공습이 트리폴리 시민들에게 심리적 충격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일부 시민들은 정부 보안요원의 감시를 피해 외신기자들을 환대하면서 정권에 대한 초조한 감정을 털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민들의 이런 태도는 “트리폴리 시민들이 서방의 공습에 무척 분노하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와 맞지 않는 현상이라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또 많은 시민들은 “트리폴리에서 최근 수차례 열렸던 카다피 지지 집회는 진짜 리비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며 “정권의 감시 때문에 사람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다국적군이 리비아에 대한 공습을 시작한 지 4일 만에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와 미국 영국이 똑같이 ‘출구전략’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물론 양측이 생각하는 전략은 서로 다르다. 카다피 원수의 목표가 ‘생존’인 반면에 미국과 영국은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고 있다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밝힘에 따라 제3국 망명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카다피 원수가 연일 이어지는 다국적군의 공습에도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지만 실은 비밀리에 나름의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클린턴 장관은 22일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와 가까운 사람들이 아프리카와 중동, 유럽, 북미 등 세계의 지인들을 찾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국면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과정에서 카다피는 여러 국가에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하면서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다”며 “카다피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는 면이 있지만 ‘내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내 옵션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클린턴 장관은 카다피 원수가 고려하는 옵션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카다피가 자발적 퇴진을 진지하게 고민하는지는 확실치 않다”면서도 “다국적군의 공습을 받고 있는 카다피가 아마도 망명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겉으론 ‘끝까지 싸우겠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지만 국제사회와 반카다피군의 퇴진 압력에 무한정 버티기는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 클린턴 장관은 이날 “미국이 카다피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속단하기 힘들다”며 “그가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리비아를 이룩하기는 힘들다”며 퇴진을 요구했다.카다피 원수의 ‘명예퇴진’을 위한 협상 가능성은 리비아 사태가 급격히 악화된 이달 초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달 초엔 반카다피군 측이 카다피 원수에게 사면을 조건으로 망명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지금도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더 이상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카다피 원수를 즉각 퇴진시키는 대신 그를 법정에 세우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나라로 망명하게 하는 협상카드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다국적군은 수십억달러 전쟁비용에 ‘이쯤에서…’ ▼ 다국적군을 이끌고 있는 미국과 영국도 벌써부터 ‘출구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장기전으로 인한 막대한 전쟁비용 걱정 때문이다.전비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 내에서 벌써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내셔널저널은 이날 미국이 리비아 군사작전에 사용할 비용이 수십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첫날 공습 때 미사일 발사에 사용한 돈만 1억 달러를 넘는다는 것. 미국과 영국은 지중해에 배치한 함정과 잠수함에서 1기에 100만 달러가 넘는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최소 161기나 발사했다. 21일 리비아 상공에서 고장으로 추락한 F-15전투기의 구입 가격은 3000만 달러가 넘는다.전투기와 군함에 드는 기름값만도 매주 수천만 달러나 된다. 20일 B-2스텔스기 3대가 미국 미주리 주 휘트먼 공군기지에서 리비아로 출격했다 돌아오는 데 기름값만 600만 달러가 들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작전이 조기에 종료되지 않으면 백악관이 의회에 추가 예산을 긴급 요청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추가 예산을 편성해도 의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토드 해리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이번 작전에 들어갈 미국의 전비가 수십억 달러를 쉽게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내에서도 출구 전략을 공개하라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역시 천문학적인 전비 때문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2일 자체 분석 결과 영국이 비행금지구역에서 별다른 공격 없이 초계임무만 수행하는 데도 하루 320만 파운드(약 59억 원)가 든다고 보도했다.외교관 출신인 로리 스튜어트 의원은 “군사개입 정도를 ‘비행금지구역 이행’으로만 제한하고 리비아 내부 갈등에는 개입하지 말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 랭커스터 의원도 “군사개입을 끝낼 시점을 정할 새로운 유엔 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닉 하비 국방부 차관은 “리비아 군사작전이 앞으로 얼마나 갈지 정부도 모른다”며 출구전략에 대한 고충을 내비쳤다.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사흘 연속 이어진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이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가운데 미군 전폭기가 야간 공습 과정 중 추락했다. 고장에 의한 것이고 일단은 조종사도 구조됐지만 그렇지 않아도 군사작전에서 2선으로 발을 빼려는 미국을 더욱 움츠리게 만들 일이 터진 것이다. 특히 다국적군이 비행금지구역 범위를 트리폴리 인근까지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다국적군 공군의 피해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리폴리의 카다피 원수 관저는 20일에 이어 21일 밤에도 다국적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이날 오후 9시경 관저 인근에서 다시 거대한 폭발음과 대공화기 소리가 들렸으며 적어도 한 발은 관저를 명중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이런 가운데 카다피 원수의 막내아들 카미스가 한 조종사의 자살특공 공격을 받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보도의 진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카미스 사망설을 계속 부인하고 있지만 반군 측 일부 웹사이트에는 정부군 전투기를 몰고 기수를 돌려 카다피 관저로 돌진했다는 ‘무함마드 무크타르 오스만’이라는 조종사의 이름과 얼굴 사진이 게재됐다. 사진 밑에는 “그의 희생이 자유민주주의 리비아에 의해 보상받기를…”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카다피의 행방 역시 여전히 묘연한 상태다. 일부 전문가는 카다피가 20일 다국적군의 관저 공습으로 실제 신변의 타격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첫 공습 직후인 20일 전화 녹음으로 국영 TV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 뒤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그가 지하 벙커에 몸을 숨겼거나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서부 지역 모처에 머물고 있을 공산이 크다. 동부 벵가지를 공격하려다 다국적군의 공습을 받고 퇴각한 카다피군은 21일 탱크를 몰고 트리폴리 동쪽 미스라타 시내로 진입했다. 건물 지붕에선 정부군 저격수들이 발포해 시민 수십 명이 사망했다. 반군 대변인은 “정부군은 미스라타에서 정전 약속을 깨고 있다”며 “이곳의 파괴 행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카다피 축출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영국은 지상군 파견 문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영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인디펜던트지 인터뷰에서 “유엔의 이름하에 전면적인 지상군을 파견하는 것과 민간인 보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필요한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며 지상군 파병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아프리카의 아들이 (미국)대통령이 된 게 기쁘고 자랑스럽다. 영원히 대통령으로 남아 있어주오.”(2009년 9월 유엔 총회 연설) “내 친구 오바마는 역대 미국 대통령과는 달리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이다.”(2010년 4월 언론 인터뷰) “존경하는 오바마. 만약 리비아와 미국이 전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당신을 여전히 사랑할 것이다.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2011년 3월 19일 리비아 정부 대변인을 통한 공개서한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짝사랑’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내 친구’ ‘내 사랑’이라는 말도 모자라 ‘내 아들’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평소 서방 세계에 온갖 험담과 거친 비난을 하면서도 유독 오바마 대통령에게만큼은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을 쏟아낸다. 카다피의 이런 태도는 미국이 서방국과 함께 그의 하야를 촉구하고 군사 개입을 결의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일 리비아 정부 대변인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나의 아들, 존경하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냈다. 이 서한에서 카다피는 “양국이 전쟁을 하더라도 당신은 내 아들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또 “우리는 알카에다와 싸우고 있다. 만약 이들이 미국 도시를 점령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며 자신의 반(反)카다피군 진압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이해를 구했다. 같은 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에게 보낸 편지에서 “리비아는 당신들의 것이 아니다”라며 강경한 어조를 보인 것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카다피의 ‘오바마 사랑’은 단순히 오바마가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2003년 이후 미국과의 외교관계 복원을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경제 및 군사지원을 얻어내고 정권에 대한 서방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도 미국과의 관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아 카다피의 애를 태웠다. 미 시사주간 타임은 “카다피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오바마 대통령과 자신을 엮어보기 위해 양국 정상회담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가뜩이나 “이슬람교도 아니냐”는 음해까지 받고 있는 처지에 카다피의 호의를 받아들이기 거북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물론 ‘일편단심’ 카다피에게도 19일 자국에 대한 공습에 미국이 참가했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은 20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랍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오바마가 결국 리비아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리비아 군사작전이 시작된 19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들에게 “(이 전쟁은)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20세기 후반 이래 국제사회의 분쟁지역 군사력 개입을 거의 모두 주도해온 미국으로서는 전에 없는 자세였다. 시사주간 타임은 “미국이 아닌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이라고 평했다. 국제사회 개입 양상의 새로운 선례를 보여주는 이번 리비아 전쟁은 그동안 ‘세계 유일의 경찰국가’를 자임해온 미국이 그 지위를 스스로 마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계산과 프랑스의 부상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첫 국제 군사 개입 결정인 이번 리비아 공습은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단독행동 대신 국제공조를 특히 중시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미국은 이번 군사작전에서 자국의 역할과 비중이 작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는 분위기다.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미국이 ‘제한적인(limited)’ 군사행동을 승인했다”며 “미 지상군의 리비아 투입은 없다”고 못 박았다. 클린턴 장관도 미국은 ‘지원자’에 머물 것임을 강조했다. 리비아에 대한 공격은 프랑스와 영국 등 최근 수년간 잠시나마 리비아와 우호 관계를 맺었던 국가들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프랑스는 19일 다국적군 개입을 결정한 주요국 정상회의를 주재한 데 이어 다국적군 가운데 가장 먼저 전투기를 파견해 리비아를 공격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18일 의회 연설에서 “자국민을 학살하는 독재자는 결코 두고 볼 수 없다”며 군사 개입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프랑스를 앞장서게 한 데에는 튀니지와 이집트 민주화 혁명이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정부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때 시위진압을 돕겠다면서 마지막까지 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이집트 혁명 때 총리와 외교장관 등이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도움으로 공짜 휴가를 즐긴 것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프랑스가 추구하는 인권 보호와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외교에서 외면한 데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었다. 언론과 야권에서는 독재자와 적절히 제휴하며 정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온 프랑스 외교 전략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런 와중에 리비아에서 전 세계를 격분케 한 학살이 자행되는데도 미국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내년 5월 대선을 앞두고 국내 지지율이 극우정당 후보에 밀릴 정도로 바닥을 기고 있는 사르코지가 국면 전환을 노리는 동시에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 주기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도 최근 이집트를 방산업체와 함께 방문했을 때 “민주주의를 빙자한 무기 세일즈 외교를 펼친다”는 비난을 들었다. ○ ‘군사 개입 다극화’ 선례6·25전쟁 이후 미국은 각 지역의 크고 작은 분쟁에 홀로, 또는 주도적으로 군사 개입을 해왔다. 하지만 압도적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에서 참혹한 패배를 맛본 이후 1980년대 레바논, 1990년대 소말리아에서 잇달아 철수했다. 최근의 이라크 및 아프간전쟁도 엄청난 미군 사상자와 재정적자를 안겨준 채 미국을 수렁에 빠지게 했다.특히 그동안 중동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은 이슬람 세계의 반미(反美) 정서를 유난히 자극했고 이는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카다피 정권의 시민학살을 막는다’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앞에 나서면 ‘미 제국주의 대(對) 이슬람’의 대결로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오바마 정부가 그동안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복원에 정성을 쏟아온 점도 이번 군사 개입의 전면에 나서기를 꺼린 이유로 보인다. 타임은 “영국 프랑스가 이번 작전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 책임을 떠맡기보단 다른 서방국가들이 이를 나눠서 수행할 때 세계가 더 안전해질 것이란 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 일각에선 이번 선례로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는 “미국이 우방국들의 뒷마당으로 물러날 수 있다”고 보도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카다피 특유의 지능적인 술책인가, 자충수인가. 카다피군은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직후 휴전을 선포하면서 한 발 물러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일 반카다피군의 근거지인 벵가지를 공격해 다국적군의 공습을 자초했다. 카다피군이 벵가지를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서방국들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공습까지 나서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사진)가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오판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선뜻 이해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카다피 원수가 국내외의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리기 위한 고의적이고 지능적인 ‘여우 같은 판단’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정부군이 벵가지로 빠르게 진격한 것은 사막이 아닌 인구가 많은 대도시를 전투장으로 만들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있다”고 보도했다. 대도시가 다국적군의 표적이 되면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날 것이고, 이는 국제사회에서 군사작전 반대여론에 불을 지필 것이란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비아 국영 TV는 “서방국의 폭격으로 최소 64명이 숨졌고 대다수는 여성과 어린이들”이라고 발표했다. 서방의 무력개입에 대한 비난여론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이다. 하지만 카다피 원수가 유엔 결의가 본격 이행되기 전에 전국을 장악해버리려는 욕심에서 자충수를 뒀다는 분석도 있다. 벵가지만 점령하면 반카다피군은 지역적으로 근거가 없어지게 되므로, 국제사회에서 “리비아에 반군은 없다. 일부 테러리스트들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계속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속전속결을 꾀했다는 것이다. 한편 1986년 미군의 트리폴리 공습으로 자신의 입양 딸을 잃는 등 공습에 대한 공포심이 여전히 남아있는 카다피 원수는 이번 공습을 당하면서 2003년 핵무기 프로그램과 대량살상무기(WMD)를 자진해 포기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은 피했지만 불충분한 의료설비와 추위 등으로 정작 대피소에서 사망하는 피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사실상 2차 재난인 것이다. 피해자는 대부분 고령자나 중환자이다. 1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인근 대피소에 피난해 있던 병원 환자 18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대피소에서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거나 장시간의 이동에 따른 피로와 영하의 날씨까지 겹쳐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후쿠시마 현 후타바(雙葉) 병원과 노인보건시설에 수용돼 있던 환자 및 시설입소자 128명 가운데 14일 밤 인근 고등학교에 버스로 이송되는 도중 2명이 숨졌으며 이후 16일까지 추가 12명이 차례로 사망했다. 이와테(巖手) 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에서는 16일 한 중학교에 대피해 있던 80대 여성이 사망했고 미야기(宮城) 현 다가조(多賀城) 시의 병원에서도 17일 고령 입원환자 8명이 숨졌다. 지금까지 이 같은 이유로 사망한 피난민만 27명에 이른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동부의 주요 도시를 차례로 탈환하며 전세 역전에 성공한 리비아 정부군이 반(反)카다피군의 근거지인 벵가지로 진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은 16일 범유럽 뉴스채널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군사작전이 끝나간다. 모든 것이 48시간 내에 종료될 것”이라며 “우리 군은 벵가지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다.정부군의 벵가지 전면 공격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대량 학살로 이어질 수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당초 전문가들 사이에선 비록 카다피군이 반군에 비해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 있지만 벵가지만은 쉽게 공격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벵가지엔 67만 명의 인구가 밀집해 있어 대규모 공습은 대량 인명 피해를 가져오게 되고 이는 국제사회에 무력 개입의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 야권과 인권단체들은 “만약 카다피가 벵가지를 공격한다면 1994년 르완다 내전 때와 비슷한 학살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해왔다.이에 앞서 정부군은 벵가지에 이르는 거점도시 아즈다비야에 집중적인 공습을 가했다. 리비아 국영 TV는 이날 저녁 “정부군이 아즈다비야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무력 폭력집단을 일소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날 아즈다비야에선 정부군의 폭격으로 반군의 방어망이 뚫렸으며 주민들이 짐을 싸서 도시를 빠져나와 벵가지로 피란을 가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 정부군이 아즈다비야를 탈환했다면 반군의 수중에는 벵가지와 토브루크 정도만 남게 된다. 그러나 반군 측은 “격렬한 전투가 발생했지만 아직도 우리가 도시의 일부를 점령하고 있다”며 정부군의 주장을 부인했다.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16일 ‘아즈다비야의 패배가 리비아 혁명의 종말을 고했다’는 기사에서 “아즈다비야 시내에는 왕정기가 모두 없어졌다”며 “아랍의 봄은 15일 아즈다비야에서 끝난 것 같다”고 보도했다한편 국제사회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논의가 자국의 이권을 염두에 둔 일부 국가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은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인 크리스 스티븐스를 야권 세력과 접촉할 연락관으로 임명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4일이 지나면서 시신 발굴이 이어지고 있지만 당국은 시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다. 시신을 인계할 가족들이 한꺼번에 실종된 경우가 많고 생존 가족이 있다고 해도 시설이 열악한 대피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실종자들 중 일부가 대거 확인돼 아직 안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사람 수만 명 가운데 상당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지진해일(쓰나미) 직격탄을 맞은 동북부 해안마을에선 무더기로 발견된 시신을 처리할 여건이 안 돼 참담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15일 일본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미야기(宮城) 현 오시카(牡鹿) 반도와 미나미산리쿠(南三陸) 등 동북부 피해지역에서 1600구 정도의 시신이 수습됐지만, 이 가운데 유족에게 인계된 시신은 151구에 불과하다. 90%의 시신이 유족을 찾지 못한 채 체육관 등의 시설에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가족들이 함께 변을 당해 시신을 넘겨받을 가족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 또 유족이 열악한 피난소에 머물고 있어 시신을 처리할 처지가 안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꺼번에 1000구가 넘는 시신이 나오면서 신원 확인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당국은 이를 위해 시신에서 지문 및 치아모형을 채취하는 등의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도록 신원 확인이 안 되거나 시신을 인계받을 가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생존자들의 위생과 건강을 위해 매장 또는 화장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보건당국 관계자는 “너무 시신이 많아 정부가 화장 또는 매장 전에 당국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현 규정의 집행을 잠시 유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민 1만 명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보도된 미나미산리쿠에서는 이 중 2000여 명에 이르는 주민의 생존 사실이 확인됐다. NHK방송은 15일 그동안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들이 43개 대피소에 나뉘어 수용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당시 쓰나미가 마을을 휩쓸자마자 주변 마을로 피신하는 과정에서 연락이 끊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전체 주민 1만760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8000여 명의 안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구조대는 지진이 발생한 지 이미 상당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존자 구조와 함께 시신 수색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AP통신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처럼 많은 시신이 깊은 잔해 속에 남아 있거나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익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된 마을들은 너무 많은 시신에 관과 화장터가 모자랄 지경이다. 이번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이와테(巖手) 현의 공무원 하지메 사토 씨는 “시신을 수습하기에는 모든 것이 절대 부족한 상태”라며 “전국의 병원 장례식장에 시신 운반용 포대와 관을 공수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와테 현에서는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와 오쓰치(大槌) 등에서 모두 2만7000여 명이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福島) 현 소마(相馬) 시의 관계자는 “우리 마을엔 화장터가 하나밖에 없어 하루에 18구의 시신만 화장할 수 있다”며 “다른 도시에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소마 시에는 대지진이 일어난 지 3일 만인 14일 처음으로 구조대가 도착했다. 구조대원들은 쓰나미의 잔해를 거둬낸 곳에 시신 포대를 쌓아놓고 구조 및 시신수습 작업에 들어갔다.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에서도 군인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생존자 수색에 나섰지만 대부분은 처참하게 숨져 있는 고령자들의 시신을 발견하는 데 그쳤다. 적십자 아시아태평양 본부의 패트릭 풀러 대변인은 “혹시라도 잔해에 깔려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필사적으로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센다이(仙臺)에서도 이날 오전 일찍부터 구조대가 망가진 주택과 얽힌 전선 사이에서 시신을 끌어내는 장면들이 목격됐다. 구조 작업도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날 오전 쓰나미 경보가 다시 발령되자 소마 시 등 동부 해안가의 군인과 구조대원들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고지대와 언덕으로 급히 피신했다. 하지만 쓰나미는 밀려오지 않았다. 또 동북부 해안의 일부 지역은 여전히 엄청난 양의 잔해와 밀려든 바닷물로 고립된 상태여서 구조팀의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 때문에 실종 또는 행방불명으로 집계된 사람들의 생사가 확인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관계자는 “반복되는 여진과 쓰나미 경보, 화재 등으로 구조 활동이 지장을 받고 있다”며 “동북부의 많은 지역은 긴급 구호팀이 도달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눈앞에서 가족들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거나 뒤늦게 죽음을 확인한 사람들은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와테 현의 에쓰코 오야마 씨는 “쓰나미가 집을 덮쳐 몸부림치는 순간 잡고 있던 딸의 손을 놓쳤다”며 “나는 살았지만 딸을 살리지 못했다”고 NHK에 말했다. 대피했던 주민들은 마을로 하나둘씩 돌아왔지만 집이 쓰나미에 휩쓸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면서 눈물을 흘렸다. 약품과 식료품이 모두 쓰나미로 휩쓸려간 병원에서는 병약한 환자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뜨고 있다. 센다이 근처 다카조 마을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입원 중이던 200명 가운데 4명이 대지진 이후 숨을 거뒀다. 모두 90세 이상 고령자이거나 중환자들이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수백 구에 이르는 익사체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레일 위를 달리던 기차들이 통째로 실종됐다. 도로와 철도는 물론이고 수도 전기 등도 모두 끊겼다. 통신마저 두절돼 가족들의 생사 확인이 안 되는 시민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이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한 노인이 바다 위에서 40여 시간 만에 구조되는 등 기적 같은 생환 스토리가 잇따랐다.동아일보 취재팀은 12일 오전 도쿄를 떠나 자동차로 9시간을 달린 끝에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난 후쿠시마(福島)에 도착했다. 진앙에 가까운 북쪽으로 갈수록 공포의 강도는 거세졌다. 식료품이 동난 편의점, 휘발유가 바닥난 주유소, 방이 없는 호텔…. 동북부 지방의 도시 기능은 완전히 마비됐다. ○ 익사체 대거 발견, 인프라 붕괴 쓰나미의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동북부 지역 해안가에선 익사체가 대거 발견되고 있다. 일본 경찰은 13일 미야기(宮城) 현 해안에서 시신 200구를 발견해 수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틀 전인 11일 밤에는 센다이(仙臺) 시 아라하마(荒濱)에서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200∼300구가 한꺼번에 발견됐다.수도와 전기 등 공공서비스는 공급에 막대한 차질을 빚었고 철도 도로 등 기반시설의 피해도 컸다. 정부는 14일부터 순번제로 미리 결정한 시간에 전력 공급을 중단하는 계획 송전을 하기로 했다.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일본에서 약 300만 가구가 전력 공급이 끊기거나 제한된 상황이다. 최소 140만 가구에는 수도 공급이 끊겼다.신칸센은 철로 손상 등으로 수도권에서 조에쓰(上越)와 나가노(長野)를 연결하는 구간의 운행이 중단됐다. 지진 피해가 집중된 곳을 중심으로 통신 두절 사태가 빈발했고 동북부의 도로 곳곳이 완전히 침수 또는 유실돼 물류도 마비됐다. 통신 두절로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태다. 지진 발생 후 전화 연결이 어렵게 되자 일본의 각 통신사들은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안전 확인 전언판’을 운영하고 있다. 피해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무사함’ ‘피해를 입었음’ ‘집에 있음’ 등의 짤막한 메시지를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설령 통화는 못해도 이 사람의 전화번호만 조회해 현재 상태를 알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한편 미야기 현과 이와테(巖手) 현 해안을 운행하던 열차 4대도 연락이 두절돼 한때 긴장이 고조됐지만 승객들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이후 확인됐다. 이 중 1대는 탈선된 채로 승객 9명이 구조됐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 기적의 생환도 잇달아 비극 속에서 극적인 구조와 생환 소식도 하나둘씩 전해졌다. 13일 오전 11시 반경 후쿠시마 현에 사는 신카와 히로미치 씨(60)는 후타바 마을 앞 15km 해상에서 표류하다 해상자위대 호위함에 구조됐다. 그는 거대한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 위에서 쓰나미에 쪼개진 지붕 조각을 타고 버티다 쓰나미 발생 후 40여 시간 만에 구조됐다. 신카와 씨는 11일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자택에서 쓰나미 경보 소식을 듣고 부인과 함께 고지대로 피신하던 중 집에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나 혼자 되돌아갔다가 집을 부숴버린 쓰나미에 휩쓸렸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왼손에 작은 상처를 입은 것 이외에는 건강하고 구조될 당시 의식도 뚜렷했다. 미야기 현 센다이 시 미야기노(宮城野) 구의 건축현장에서 일하던 트럭운전사 기쿠치 데쓰야 씨(37)는 쓰나미가 닥친 11일 현장의 조립식 주택에 갇혀 떠내려가다가 겨우 살아났다. 기쿠치 씨가 있던 플라스틱 조립식주택은 현장에서 1km 떨어진 곳까지 쓰나미에 쓸려 내려갔다. 바닷물이 주택 안으로 슬슬 들어오더니 결국에는 턱 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기쿠치 씨는 머리로 조립식 주택 천장을 밀어붙여 겨우 숨쉴 공간을 마련하면서 버텼다. 쓰레기와 소형자동차가 주택을 쳐댔다. 기쿠치 씨는 쓰나미가 좀 약해지고 주택 내 물이 빠지면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기쿠치 씨는 “정말로 ‘죽느냐 사느냐’였다”고 한숨을 쉬었다. 미야기 현에서는 한 미완성 선박이 15시간을 표류하다가 12일 구조 헬기에 발견됐다. 배에 타고 있던 선박 근로자 81명도 전원 구조됐다. 이 지역 한 조선 업체가 건조 중이던 이 선박은 전날 10m 높이 쓰나미에 휩쓸려 먼 바다로 떠밀려갔다.○ ‘유령 도시’로 변한 관광지쓰나미는 일본의 대표적인 미항인 홋카이도의 관문 하코다테도 덮쳤다. 이곳에 도달한 쓰나미의 높이는 2m로 다른 곳보다는 낮았지만, 도시 곳곳은 컨테이너 박스들과 나무 상자들이 뒹굴었다. 도로는 피난길에 오른 차로 꽉 막혔다. 유럽 건축물과 일본식 주택이 어우러져 동서양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주민 3만 명이 일제히 빠져나가면서 졸지에 유령도시가 됐다. 시내의 명물인 케이블카와 열차마저 운행이 중단돼 차가 없는 사람들은 걸어서 대피해야 했다.대지진은 벚꽃 철을 맞아 여행 성수기를 맞았던 일본 관광산업 전체에도 쓰나미를 몰고 왔다. 일본을 여행 중이던 관광객들이 황급히 귀국길에 올랐고 세계 각국에서 일본 여행 상품 환불 사태가 벌어져 여행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 관광명소들도 속속 영업을 중지하고 있다. 쓰나미로 일부가 침수된 도쿄 디즈니랜드는 즉시 휴관을 선포한 뒤 21일을 영업 재개 목표일로 삼고 안전 점검에 착수했다. 도쿄 만의 인공섬 오다이바도 지진으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 속에 묻혔다. 야간이면 황홀한 불을 밝혔던 도쿄타워와 레인보브리지, 오사카 번화가 도톤보리의 명물 간판 구리코 등 일본의 대표적 상징물과 명소들은 전력 절감을 위해 조명을 끄기로 했다.○ 도쿄에서 후쿠시마까지의 9시간도쿄를 떠나 동북부로 향하는 국도는 일반 차량 운행이 통제됐다. 취재차량과 구호트럭만이 국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 라디오에선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방사성 물질이 흘러나왔다. 폭발지역 20km 밖으로 피하라”는 긴급 안내 방송이 되풀이됐다. 북쪽으로 다가갈수록 도로는 곳곳에 균열과 굴곡으로 파여 있었다. 자위대 병력을 태운 트럭들이 텅 빈 도로를 줄지어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치기 현 북쪽을 지날 무렵 취재차량의 휘발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주유소마다 기름이 없었다.도쿄를 출발한 지 9시간 만에 원전 폭발 지역에서 60km 떨어진 후쿠시마 서부에 도착했다. 먹을 것을 구입하려고 한 편의점에 들렀지만 식료품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편의점 직원들은 직접 100엔짜리 주먹밥까지 만들었지만 이 역시 모두 동났다. 후쿠시마에는 호텔 방이 없거나 영업을 중단했다. 취재팀은 결국 피난민 300명이 머물고 있는 후쿠시마 시청에 양해를 구해 이곳 로비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아이 울음소리와 노인의 기침소리, 시시각각 지진 피해상황을 전하는 TV 속보가 반복됐다. 시청 건물은 새벽녘까지 여진으로 흔들렸다.후쿠시마=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은 규모와 예상되는 파장을 봤을 때 여러모로 16년 전 한신(阪神) 대지진을 연상시킨다.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한신 대지진은 리히터 규모 7.3으로 간사이(關西) 지방에 집중적인 피해를 끼쳤다. 당시 6434명이 목숨을 잃었고 4만3000여 명이 다쳤으며 재산피해도 1400억 달러가 넘었다. 이번 도호쿠 대지진은 규모(8.8)면에서 한신 대지진 당시보다 훨씬 큰 것을 감안했을 때 인명 및 재산 피해액이 상당히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신 대지진이 조선·철강업의 중심지인 고베(神戶) 시를 중심으로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줬듯이 이번에도 원자력발전소와 정유·철강공장 등이 이미 가동이 중단되거나 화재가 발생하는 피해를 봤다.그러나 두 지진 사이에는 지진 발생 지점이 다르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한신 대지진이 고베 시 반경 100km 안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끼친 내륙의 지진인 반면 이번 지진은 열도에서 130km 떨어진 바다에서 시작된 지진해일(쓰나미)이라는 것이다. 육지에서 발생한 지진은 피해범위가 그리 크지 않은 대신 제한된 지역에 집중적인 피해를 주고 쓰나미는 반대로 광범위한 지역에 산발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번 지진으로 아시아는 물론이고 북미 남미 등 태평양 연안 전체에 비상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지진이 인구가 밀집한 내륙이 아닌 바다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피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을 가능성도 있다.한신 대지진을 겪은 후 일본 정부가 절치부심하며 지진대비 시스템을 강화한 것이 이번 지진 피해를 줄이는 데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일본 정부는 건물의 내진설계를 의무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와 직장을 대상으로 재난 대비훈련을 강화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지진 대비 시스템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용식 한양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일본은 내륙지진뿐 아니라 인명피해를 동반한 쓰나미도 1년에 평균 두 차례씩 발생한다”며 “따라서 이번 지진에 대한 방어책도 철저히 수립해 놨을 것”이라고 말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벵가지를 제외한 리비아의 대부분을 장악했다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측의 주장과 달리 여전히 자위야와 라스라누프 등 주요 도시들을 반(反)카다피군이 장악하고 있다는 외신들의 현장 잠입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의 마틴 플레처 기자는 6일 정부군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트리폴리 인근 전략요충지인 자위야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민가에 다다르자 30여 명의 청년 자원병들이 왕정 시대의 국기를 흔들며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었다. 지난 사흘 동안 4차례나 정부군을 격퇴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도대체 카다피는 어디 있냐”고 외쳤다. 정부군이 자위야를 장악했다는 주장에 대해 한 청년은 “만약 카다피가 여기를 점령했다면 우리는 모두 죽어있을 것”이라며 “세상에 진실을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 시내 한 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카다피군은 의사와 구급차, 거리에서 움직이는 모든 사람을 무차별로 공격해 50명 이상이 숨졌다”고 말했다. 이날 카다피 원수 측은 자위야 등 대부분을 탈환했다며 수도 트리폴리에서 승전 축하 행사를 열었다. 영국 가디언지 기자가 8일 둘러본 라스라누프에서도 연일 계속되는 정부군의 공중폭격에도 불구하고 반카다피군의 사기는 높았다. 1만여 시민 대다수가 탈출한 가운데 매일 AK소총, 기관총, 심지어 식칼을 휘두르며 픽업트럭에 빽빽이 올라탄 젊은 반군 자원병 수백 명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이들은 일부는 계속 남아서 싸우고, 일부는 저녁이 되면 차를 이용해 집에 가서 자고 다음 날 다시 나오는 ‘출퇴근식 항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곳 병원의 의사 살렘 랑기 씨는 “우리 대부분은 두려움이라는 장벽이 깨진 것을 발견했다”며 “사람들은 싸울 용기가 있다”고 전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리비아의 마이클 콜리오네.’ 마이클은 영화 ‘대부’에 나오는 콜리오네 집안의 막내아들(알 파치노 분)이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순진하고 샌님 같았던 그의 이미지는 ‘마피아 패밀리’의 일원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아버지가 적들의 공격을 받고 가문이 위기에 처하자 선뜻 대부의 자리를 이어받아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리비아 사태 이후 무아마르 카다피 일가의 행보를 분석해 온 전문가들은 카다피의 7남 중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38·사진)을 마이클에 비유했다. 영국 유학파로 국제사회와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개혁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었지만 막상 가문이 위기에 처하자 독재자 아버지를 비호하는 인물로 변했다는 것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7일 ‘리비아 마이클 콜리오네의 이해’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그의 변신을 집중 조명했다. 그는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일찌감치 후계자로 꼽혀 왔다. 리비아의 최고 명문 알파티흐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런던정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그의 논문이나 연구 주제는 ‘북아프리카에 시민사회와 자유주의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외교무대에서도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3년 아버지 카다피를 설득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들었고, ‘카다피 재단’을 운영하면서 자국의 인권문제 개선에 실질적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들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리비아 사태가 터진 이후 크게 달라졌다. 시위 초기인 지난달 20일 그는 “마지막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싸우겠다”며 ‘피의 내전’을 경고했다. 또 “나의 가족 및 정권과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다”며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을 “웃기는 일”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중동 전문가들은 독재아랍국가의 황태자로서 서구 선진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그에게 여러 정체성이 혼재돼 있다고 설명한다.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과 민주주의 개혁의 신념이 내면에서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데모스의 벤저민 바버 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위험에 처하자 그는 가족을 선택했다”며 “북아프리카의 부족사회에서 혈연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시위가 정부군에 의해 완전 진압되고 그가 정권을 이어받으면 알려진 자신의 신념대로 전면적 개혁조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아직은 남아 있다. 하지만 포린폴리시는 “오랫동안 쌓아온 개혁가로서의 업적, 민주와 인권을 위한 노력은 그의 이번 결정으로 단숨에 무너졌다”고 평가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미국 복음주의 계열의 유명 목사가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는 내용의 책을 발간해 논란이 일고 있다. 7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시간 주 마스힐바이블 교회의 롭 벨 목사(40)는 곧 출간을 앞둔 ‘사랑이 이긴다: 천국, 지옥, 그리고 모든 사람의 운명’이란 책에서 “사랑의 하느님은 인간의 영혼에게 영원한 고통을 선고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벨 목사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 천국에 가고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질까”라고 물으며 그 대답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기독교 교리와 배치되는 것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신도 1만 명의 대형 교회 목사로 ‘교계의 록스타’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 미국 ABC방송은 “최근 설문 결과 지옥의 개념을 믿는 미국인은 전체의 59%로 조사됐다”며 “일부에선 벨 목사의 주장을 ‘이단’이라고 공격하지만 그를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 ‘나침반 북극’ 자북, 급속 이동중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을 뜻하는 자북(磁北)이 캐나다 지역에서 진북(眞北·지리상의 북극점) 반대편에 있는 러시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100년 전만 해도 연간 약 15km의 속도로 이동하던 자북이 최근엔 시베리아를 향해 연 60km의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자북의 변화는 지구 생태계나 인류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장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철새의 비행경로가 달라질 수 있으며, 나침반을 이용하는 각종 운송수단도 항법장치를 재조정해야 한다. 미국의 일부 공항은 최근 자북을 기준으로 매겨진 활주로 번호를 바꾸는 데 애를 먹었다. 자기장을 근거로 유전 채굴 위치를 정하는 석유회사들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은 자북이 움직이는 이유를 액체상태의 철이 들어있는 지구 핵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추정한다. ■ 中 이르면 2015년 ‘두 자녀’ 허용중국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이 빠르면 2015년 폐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산하 인구자원환경위원회의 왕위칭(王玉慶) 부주임은 6일 “전문가들이 두 자녀 정책으로의 전환에 대해 연구 중이며 주무 부서인 위생부도 두 자녀를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며 “두 자녀 허용은 2015년쯤 도입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인구 폭증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차이징(財經)망이 7일 보도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인 런민(人民)대 지바오청(紀寶成) 총장도 “인구 저성장 추세가 20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산하 제한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 때문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리비아의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반군이 트리폴리로 향하는 거점 도시 라스라누프를 점령하며 서진(西進)을 계속하는 가운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친위대는 트리폴리 부근 전략요충지인 자위야와 중부도시 빈자와드를 빼앗았다. “시위대가 점령했던 일부 도시를 빼앗았다”는 카다피 원수 측의 주장을 반군이 즉각 부인하는 등 리비아 내전의 향방은 점점 깊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뺏고 뺏기는 혈투 속 양측 주장 엇갈려 반정부군은 4일 저녁 석유터미널이 있는 동부 항구도시 라스라누프를 점령한 뒤 6일 이곳에서 서쪽으로 140km 떨어진 카다피의 고향 수르트를 향해 진격했다. 이에 카다피 진영은 라스라누프를 전투기로 폭격하고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미스라타에도 탱크 공격으로 맞섰다. 또 빈자와드에서도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로 2명이 숨졌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전황을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리비아 국영TV는 이날 “정부군이 미스라타와 라스라누프, 동부의 토브루크를 반군에게서 빼앗았다”고 보도했고 이를 본 카다피 지지자 수천 명이 트리폴리 시내로 쏟아져 나와 ‘정권의 상징’ 녹색기를 흔들며 축하 집회를 열었다. 이날 새벽 트리폴리 곳곳에서 잇따른 총격 소리에 외신들이 긴급 보도를 내보내자 정부 측은 “정부군의 선전을 기념하는 축포 소리”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대 측은 즉각 AFP통신 등 외신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이들 도시를 장악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앞서 5일 새벽 탱크와 박격포를 앞세운 카다피의 친위대가 인구 20만 명의 도시 자위야를 급습했다. 목격자들은 “정부군의 용병들이 거리로 나오는 사람에게 닥치는 대로 총을 쐈다”며 “건물 발코니에 있던 주민이나 어린이도 총에 맞았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 과정에서 최소 10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 반정부군 “유일한 리비아 대표조직” 선언 반정부 시위대 측은 자신들이 점령한 벵가지에서 대표기구의 공식 출범을 선언하고 임시 각료를 임명했다. 이들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터 리비아의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외교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30인으로 구성된 국가위원회 대표인 무스타파 압델 잘릴 전 법무장관은 5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리비아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조직임을 선언한다”며 “우리의 대표성을 인정받기 위해 이미 유럽 및 아랍 국가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위원회는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임시정부 격인 3인 비상위원회도 만들었다. 연구기관 출신인 마흐무드 제브릴이 위원회의 총괄 대표를 맡고, 1975년 카다피 축출 시도에 실패해 옥살이를 했던 오마르 하리리와 최근 인도 주재 대사직을 사임한 알리 알에사위가 각각 국방과 외교 분야를 책임지게 됐다. 반군의 유엔 대사는 지난달 25일 유엔에서 “오랜 친구였던 카다피를 처벌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던 압둘라흐만 무함마드 샬감 전 유엔 대사가 맡는다. 그는 카다피 정권에서 해임됐다. 위원회는 “카다피 퇴진을 위해 국제사회가 리비아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은 원치 않지만 그의 본거지에 대한 전투기 공습은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럽연합(EU)은 6일 국제사회 최초로 리비아의 현지 상황을 점검할 실사단을 트리폴리에 파견했다고 밝혔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광주지법 파산부의 부적절한 법정관리 업무처리와 관련해 법원행정처가 현지 진상조사에 나섰다. 6일 광주지법 등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부장판사)과 실무관이 5, 6일 이틀간 광주지법에서 파산부 선재성 부장판사의 법정관리 업무 전반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이들은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채 선 부장판사와 법정관리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했다.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대우건설이 리비아의 근로자를 철수시키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함께 배에 태워 그리스 크레타 섬으로 탈출시킨 방글라데시 근로자 가운데 49명이 그리스에 밀입국을 하려고 바다로 뛰어들어 이 중 3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다. AP통신과 그리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근로자 1219명을 태운 선박이 5일 밤 크레타 섬의 하니아 항에 도착했다. 근로자들은 대우건설이 리비아 트리폴리에서 철수시킨 인력으로 대부분이 방글라데시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 새벽 이들 중 49명이 정박한 배에서 밧줄을 이용해 바다로 뛰어내려 해안가로 탈출을 시도했다. 가난한 본국으로 송환되느니 차라리 유럽에서 불법체류자로 남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항만 당국 관리들은 이들 가운데 3명이 죽고 다른 30여 명도 심각한 저체온증을 보여 병원에 이송됐다고 밝혔다. 나머지 11명은 실종됐다.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이 배에서 내려 그리스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해 대우건설 측은 이들을 배에서 하니아 공항에 도착할 전세기까지 이탈 없이 이동시켜 불법체류를 차단하겠다고 그리스 당국에 약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학생 체벌 논란에 휩싸인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동성 씨(31·사진)가 미국 스피드스케이트연맹으로부터 코치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워싱턴포스트는 3일 “연맹이 지난달 말부터 김 씨에 대한 조사를 벌여 최근 자격정지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김 씨는 이달 11일 위스콘신 주에서 열리는 미국 쇼트트랙 챔피언십을 비롯해 연맹이 정하는 일부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은퇴 후 버지니아 주에서 쇼트트랙을 가르치던 김 씨는 일부 학부모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하키 스틱, 타이머 등으로 때렸다”는 진정서를 연맹에 낸 후 조사를 받아 왔다. 김 씨는 체벌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야권과 반정부 시위대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평화적 정권 이양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3일 “살레 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정권 이양 계획을 수립하라는 야권의 요구에 동의했다”며 “양측이 타협점에 도달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33년째 집권해온 살레 대통령이 퇴진한다면 진 엘아비딘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에 이어 중동 반정부 시위 사태 이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세 번째 대통령이 된다. 살레 대통령은 그동안 다음 선거가 치러지는 2013년에 물러나겠다며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과 마찰을 빚어왔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