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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4일 수만 명의 시위대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벌였다. 시위대는 이란혁명 32주년 기념일인 11일에도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예멘과 바레인에서도 각각 수천 명이 유혈시위를 벌였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아랍·중동 민주화의 태풍이 이집트에 이어 인접국을 잇달아 회오리 속에 몰아넣고 있는 양상이다. 이날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발발하자마자 2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격렬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전했다. 이란 당국은 대규모 경찰과 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마구 구타하고 최루가스와 페인트볼을 발사하며 진압에 나섰다. 친서방 국가인 튀니지와 친미 국가인 이집트의 정권 붕괴에 박수를 보내던 이란 정부는 반정부 인사들을 가택연금하고 페이스북을 차단했다. 미국과 서방사회는 즉각 시위대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란 테헤란에서 14일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친서방 국가인 튀니지와 친미국가인 이집트의 정권 붕괴에 박수를 보내던 이란 정권을 크게 당혹시켰다. 이란에서는 2009년 6월 대선 직후 촉발된 부정선거 항의시위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그해 12월에도 또다시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정규군까지 동원돼 가까스로 진압했다.이란 당국에 튀니지와 이집트의 민주화 성공을 등에 업고 또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반정부 시위는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함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타도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자신과 마찰을 빚어온 전 총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총리직을 없애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이란 당국은 시위가 벌어지자마자 원천봉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강력히 대응했다. 14일 수만 명의 경찰과 민병대가 시위 예상지와 골목을 가로막고 시위대가 나타나는 대로 연행하거나 거리 진출을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 2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번 시위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진 야당 지도자 무사비와 메흐디 카루비는 가택연금당했고 휴대전화와 집전화도 차단당했다. 외신 기자들의 시위 현장 접근도 차단됐다.외신들은 15일 테헤란 거리는 전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야당 측이 1979년 발생한 이슬람 혁명 32주년이 되는 18일에 추가 시위를 벌이겠다고 집회 신청을 다시 내 긴장은 여전히 고조되고 있다.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집트 사태 초기의 주저하던 자세와는 달리 즉각 이란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은 이란인들의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확인서(testament)이자 이란 정권의 위선에 대한 기소장”이라며 “이란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앞서 13일 페르시아어 트위터를 개설했다.▼ 알제리-요르단-수단도 ‘反정부 시위 도미노’ ▼ “아랍에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4일 신임 참모총장 취임식에서 최근 아랍을 휩쓸고 있는 민주화 도미노를 이같이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아랍권 민주화 혁명의 불길이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예멘 바레인 알제리 등으로 거침없이 옮겨가고 있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는 14일과 15일 이틀간 계속된 격렬한 반정부 시위로 시위대 2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쳤다. 시아파 무슬림이 주축이 된 시위대 수천 명은 종교 차별 철폐, 신헌법 제정, 총리 선출제 도입, 정치범 전원 석방을 요구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고무총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며 강경 대응했고 시위대도 투석전으로 맞섰다. 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바레인 국왕은 15일 TV에 출연해 “시민 사망에 유감을 표하며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바레인 왕가는 최근 물가상승으로 인한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해 식량 보조금과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고 가구당 1000디나르(약 2600달러)를 지급했지만 국민적 분노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시위대는 아직 왕가의 사퇴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있다. 바레인의 이번 시위는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고질적인 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레인은 인구의 70%가 시아파지만 정작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수니파다. 전문가들은 바레인의 시위가 확산되면 이웃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차별을 겪는 시아파가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본다.예멘 수도 사나에서는 15일 시위대 3000여 명이 사나대 캠퍼스에서 시내 중심부인 타흐리르 광장까지 행진하며 33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공교롭게 광장 명칭이 민주화의 성지로 부상한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과 똑같다. 이곳에서 시위대는 수천 명의 전투경찰 및 2000여 명의 친정부 시위대와 충돌해 몸싸움을 벌인 뒤 정오경 해산했다. 사나에서는 벌써 닷새째 같은 방식으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14일과 15일 이틀간 예멘의 옛 수도이자 제2의 도시인 타이즈에서도 5000명의 시민이 뛰쳐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예멘 아덴 항을 관리하는 국영기업 노동자들도 반정부 시위에 파업으로 동참했다. 미국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바레인에는 미 해군 제5함대의 기지가 있으며 예멘 정부도 최근 이 지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알카에다 소탕 작전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한편 19년간 시위가 금지돼 온 알제리에서도 12일 수천 명이 수도 알제에서 시위를 벌인 데 이어 18일 대규모 행진이 예고돼 있다. 요르단과 수단에서도 이미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거나 벌어질 예정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하야 발표 하루 전인 1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즉각 하야를 거부했을 때 두 아들인 알라와 가말이 주먹다짐을 벌이기 직전까지 갔다고 이집트 국영신문 알 아크바르가 13일 보도했다. 당초 연설문 초안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군부에 권력을 즉각 이양한다’는 내용이었지만 가말이 ‘9월까지 점진적으로 권력을 이양한다’고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대통령궁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녹화 도중에 알게 된 장남 알라는 “아버지의 말년을 명예롭게 하기는커녕 이런 방식으로 망쳐 놨다”며 가말을 심하게 나무랐고 주먹다짐 직전에 한 고위관료가 나서 겨우 말렸다는 것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마지막 대국민 연설은 반정부 시위대에 사실상 기름을 붓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무바라크 대통령은 24시간도 못 견디고 수도 카이로를 탈출해야 했다. 알라와 가말은 본래 정적 사이다. 1990년대만 해도 장남 알라가 무바라크의 법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후 차남 가말이 부상하면서 알라를 눌렀다. 권력을 장악한 가말은 친구들에게 집권당 고위직을 나눠주었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대중적인 분노의 도화선이 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수도 평양시의 절반 이상을 황해북도로 편입시켜 행정구역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북한은 평안남도 소속이던 남포시를 특별시로 승격함으로써 행정구역을 기존 11개 시도(평양직할시와 나선특별시, 9개 도)에서 12개 시도로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는 14일 북한의 노동당 및 내각 개편 내용을 담은 2011년판 북한 주요인물, 기관·단체별 인명집을 공개하면서 이 같은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을 공개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평양시 남쪽의 강남군 중화군 상원군 승호구역 등을 황해북도로 편입해 평양시를 축소 개편했다”며 “이는 북한의 조선중앙연감 2009년판과 2010년판을 비교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평양시 면적은 기존 2113km²의 43% 수준으로 축소됐고, 인구는 50만 명 정도가 줄어든 250만 명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北 “특별배급 부담 덜자” 이례적 수도 축소 ▼ 브라질 미얀마 등 일부 국가가 인구 과밀 등으로 수도를 옮긴 사례는 있지만 수도의 규모를 절반 이상 축소한 것은 이례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평양 시민에게 지급되는 각종 특혜에 따른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일 가능성이 크다”며 “평양의 규모를 줄여 선택된 사람들인 평양시민을 집중 관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평양의 혁명수호 특권층 평양은 이른바 북한의 핵심계층이 집중된 ‘그들만의 도시’로 불린다. 북한 정권은 핵심 지지계층이 몰려 사는 평양의 시민에게 특별 배급을 해왔다. 다른 지역과 달리 평양시민에게는 쌀의 비율을 훨씬 높게 배급하고 일반 주민이 쉽게 얻기 어려운 기름과 간장, 된장 등의 공급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평양의 구성원을 대대적으로 정리해 정치적으로 조그만 문제라도 있으면 지방으로 추방 조치했다. 정권에 적대적이고 불순한 세력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혁명의 성지’를 지키겠다는 의도였다. 특히 1997년부터 평양시민에겐 ‘평양시민증’을 나눠줌으로써 다른 지역 주민과 차별해 왔다. 평양시는 북한 당국이 핵심 지지계층에 더 많은 배급과 교육기회를 보장해주고 이들의 충성심을 강요하는 정권수호의 보루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평양에서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나타난 민주화시위가 발생할 수 없다.○ 인구 급증과 정권의 부담 그러나 최근 일단 평양시에 들어온 사람들이 지방으로 나가려 하지 않아 인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정권에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도 “늘어나는 평양시민에 대한 배급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평양에 거주하던 여성이 지방의 남성과 결혼하면 거주지를 지방으로 정하도록 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 정도로는 해결되지 않자 결국 강남군 중화군 등 농촌지역을 떼어내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강남군 중화군과 비슷한 수준의 농촌지역인 강동군을 여전히 평양시에 포함시킨 점이다. 대북 소식통은 “강동군도 평양시에서 떨어져 나가도 상관없는 농촌지역이지만 이곳은 이른바 ‘제2경제’라 불리는 군수경제가 몰려있는 곳이어서 별도의 대접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의 평양 행정구역 개편 북한 수도인 평양은 1946년 9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결정에 따라 평안남도에서 분리돼 중구역 동구역 서구역 남구역 북구역 등 5개 구역을 포함하는 특별시로 승격됐다. 이후 평양의 행정구역 개편은 대부분 규모가 확대되는 방향이었다. 북한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행정구역 체계를 개편하면서 평양을 직할시로 변경했고 1956년에는 만경대구역과 서성구역을 추가로 신설했다. 1967년에는 본평양 서평양 동평양으로 나눴고 1972년 임시 수도였던 평양을 북한의 공식 수도로 정했다. 1996년 평성시에서 일부 지역을 분리 흡수하면서 은정구역을 신설한 이래 최근까지 19개 구역과 4개 군, 7개 노동자구, 279개 동, 118개 리로 구성된 체제를 유지해왔다.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1일 이집트의 민주화 ‘메카’로 부상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전국적으로 최대 100만 명(AFP통신 추산)이 모였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홍해 휴양지로 ‘피신’했지만, 즉각 퇴진을 거부한 ‘30년 장기집권자’에 대한 시위대의 분노는 누그러들기는커녕 절정을 향해 폭발하듯 타올랐다.○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 11일 오전 타흐리르 광장은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가득 찼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이집트 국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광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광장을 차곡차곡 메웠다. 금요예배 시작 시점인 이날 오후 2시경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발표된 이날 군의 성명은 시위대의 분노를 더욱 고조시켰다. 시위대에 막 합류하려던 한 여성은 “우리는 군이 옳은 선택을 내리길 기대했다. 하지만 군은 언제나 무바라크 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며 “과도정부를 이끌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광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던 한 40대 남성은 “우리는 무바라크가 대통령궁에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가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것이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떠나라’는 뜻의 아랍어 “이르할”을 소리 높여 외쳤다. AP통신은 시위대의 의지가 시위 발발 이래 가장 굳세어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날 시위를 무바라크 재임 30년 중 ‘최대 규모의 시위’로 만들겠다는 시위지도부의 다짐대로 인파가 몰려들어 광장에 배치된 군 탱크가 일찌감치 군중의 물결 속에 파묻혔다. 밤새 광장을 지킨 이들이 탱크의 캐터필러(무한궤도 바퀴)에 기대 쉬는 모습도 보였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 대한 불신도 가득했다. 전날 밤부터 시위대에 참여했다는 30대 후반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무바라크가 술레이만에게 권력을 넘겨줬다고 하지만 무바라크나 술레이만이나 똑같은 사람”이라며 “오랫동안 이집트 정보국장으로 일한 술레이만이 더 폭력적이고 음흉하다”고 말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AL) 사무총장에 대한 평도 다르지 않았다. 이 교사는 “무사 사무총장도 무바라크 밑에서 10년 동안 외교장관을 한 사람”이라며 “그 역시 현 체제 인사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아침부터 탱크 4대가 지키는 대통령궁 정문 앞에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몰려 무바라크 퇴진 구호를 외쳤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몇 블록 밖에 떨어져 있는 정부와 의회 청사 국영TV 방송국도 아침 일찍부터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700만 인구의 카이로 시내 곳곳은 시위대에 동조하는 자동차들이 울리는 경적으로 시끄러웠다. 한편 야권 지도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반정부 시위로 위기에 처한 이집트 정권은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같다”며 “연립정부에 권력을 넘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분노의 함성으로 변한 희망의 축제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타흐리르 광장은 축제의 마당이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곧 하야를 발표하는 대국민 연설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45분 무바라크 대통령이 TV 앞에 나섰다. 희망에 들떠 있던 시위대의 얼굴 표정이 어둡게 바뀌기까지는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나는 외부의 강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대선이 치러지는 9월까지 평화적 권력이양 절차를 밟아갈 것”이라고 언급하자 시위대의 희망은 분노로 바뀌었다. 17분간 진행된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술레이만 부통령이 TV에 출연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귀가와 일자리 복귀를 권고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신발을 쳐들어 TV를 향해 흔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인근 국영TV 및 라디오 방송국 건물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했다. 한편 이날 시위 현장에 투입된 군 장교들이 속속 시위 행렬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흐메드 알리 샤우만 이집트군 소령은 11일 로이터통신과의 통화에서 “대위에서 중령에 이르는 중간급 장교 약 15명이 시민혁명에 동참했고, 이들은 곧 시위대를 상대로 연설할 것”이라면서 “우리의 목적은 시민들의 목적과 같다”고 강조했다. 카이로=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향후 이집트 시위의 향방은 정부와의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은 최대 야권세력 무슬림형제단의 태도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형제단은 1954년 자신들을 불법 조직으로 규정한 정부가 57년 만에 협상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데 크게 고무되어 있다. 이번 기회를 앞으로 합법적으로 정치활동을 벌이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임 요구를 제외한 모든 문제에서 그들에게 최대한 양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8일 ‘4·6청년운동’ 같은 반정부 시위 청년 단체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며 협상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지만 형제단은 며칠 안에 2차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혀 협상에 계속 참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물론 형제단도 결과에 따라 협상을 끝낼 수도 있다고 정부를 압박하고는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7일 형제단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 행정부와 형제단 간에 교류는 없었으며 형제단 조직 몇몇 리더의 언사와 상당한 입장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아프리카 수단 남부에서 진행된 분리독립 국민투표 결과 유권자의 98.83%가 독립에 찬성했다고 남수단 국민투표위원회가 7일 밝혔다. 이로써 남수단 독립이 확정됐다. 대외적인 독립국 선포식은 7월에 있을 예정이다. 남수단 독립은 역사와 종교, 문화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아프리카에 국경선을 그었던 제국주의 식민통치 잔재가 청산되고 수십 년간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초래했던 수단 내전이 종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표위원회는 지난달 9∼15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유효투표 383만7406표 가운데 찬성 379만2518표(98.83%), 반대 4만4888표(1.17%)였다고 이날 공식 발표했다.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국영 TV 연설에서 투표 결과를 수용하고 환영하며 남북 우호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살바 키이르 남수단 자치정부 대통령은 “남북 사이에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통행이 허용되는 느슨한 국경을 설치하고 치안 면에서도 북부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남수단 독립을 환영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수단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연평도 인근으로 표류해 온 북한 주민 31명 중 대다수는 북한에서 ‘머슴 조개잡이꾼’으로 불리는 사람들로 보인다. 머슴 조개잡이는 특히 북한 서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계방식이다. ‘머슴’이란 표현은 강도 높은 노동을 해봤자 외화벌이 회사의 배만 채워주고 당사자의 몫은 보잘것없어 북한 주민들이 자조적으로 붙인 것이다. ○ 서해를 적시는 조개잡이 여성의 눈물19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서해 곳곳에는 조개를 중국과 한국에 수출하는 외화벌이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런 회사들은 수십 명씩 주민을 모집한다. 성별이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는 미성년자나 노인, 여성 수만 명이 바닷가에 몰려든다. 대다수가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가난한 이들이다.7일 복수의 탈북자와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엔 농사지은 양곡을 군량미로 빼앗긴 농민들이 합세하고 있다고 한다. 조개가 주요 생산물인 서해와 달리 동해는 오징어가 주산물이다. 서해에 조개를 잡아주는 머슴 조개잡이꾼들이 있다면 동해에는 오징어를 잡아주고 삯을 받는 ‘삯발이’들이 있다. 삯발이는 일 자체가 힘들어 여성들을 잘 뽑지 않는다. 동해의 삯발이가 7∼10월 오징어철에 한정된다면 서해의 조개잡이는 1년 내내 이어진다. 조개잡이는 보통 30명 규모로 진행된다. 머슴 조개잡이꾼이나 삯발이들에게는 정해진 휴일이 없다. 바다날씨가 궂으면 휴일인 셈이다.본격적인 조개잡이철은 3∼10월이다. 겨울에도 조개잡이를 하지만 다리가 길고 껍데기가 얇은 자그마한 칠게도 많이 잡는다. 밀물 때 배를 타고 나오는 이유는 육지에서 멀어져야 조개를 많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썰물로 갯벌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대합 모시조개 우렁이 소라 등을 캐낸다. 잡은 양에 따라 밀가루나 기름과 같은 식품을 분배받기 때문이다. 장화를 살 형편이 못되는 가난한 여성들이 겨울에 맨발로 갯벌을 뛰어다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많이 잡는 사람은 한 달에 밀가루 세 포대(75kg)를 벌기도 하지만 한 포대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기름을 절약하기 위해 한 번 배를 타고 나오면 일주일씩 바다에 머물기 일쑤다. 이 때문에 머슴 조개잡이꾼들은 조개 캐는 공구 외에도 갈아입을 옷과 식량 냄비 담요 땔나무를 준비해 배에 오른다. 서해안 해변이나 무인도에는 비닐박막으로 임시 움막을 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조개를 잡아 모았다가 시장에 가서 판다. 요즘 한국에 수입되는 중국산 조개 중에는 이렇게 생산되는 북한산이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목숨을 내건 조개잡이조개잡이는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 초보자들이 조개잡이에 정신이 팔렸다가 갑자기 밀려든 밀물에 빠져 죽는 일도 흔하다. 서로를 잘 몰라 누가 죽어도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낡은 배라도 뜨기만 하면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사고가 잦다. 올 1월에도 북한 중앙통신은 “조개잡이에 나갔다 표류했던 평북 곽산군 주민 10여 명을 김정일 장군님이 보내준 공군 비행기가 구했다”고 선전했다.2008년에도 음력설 다음 날인 2월 8일에 북한 주민 22명이 탄 조개잡이 배가 남쪽에 표류해 온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구조 13시간 만에 전격 북송된 이들이 공개 처형됐다고 전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보위부에서 닷새 동안 조사받고 일상생활로 돌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표류한 주민들도 북한에 돌아가면 보고 들은 것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한 뒤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에서는 배를 타기 전에 반드시 신원을 증명해야 한다. 돌아가지 않으면 남은 가족의 생명이 위험하다.주성하 기자 (김일성대 졸업) zsh75@donga.com}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천연가스를 공급해주는 수송관이 5일 폭발해 양국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됐다. 폭발 원인을 놓고 이집트천연가스사는 가스누출에 따른 사고로 추정된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선 ‘이집트-이스라엘 간의 협력관계에 불만을 품은 테러세력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집트 시위사태로 무바라크 정권 30년간 유지돼온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안정된 관계가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터진 이번 사건을 놓고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이번 폭발 지점은 이집트 수에즈운하 입구에서 출발한 천연가스 수송관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인 시나이 반도 북부의 엘 아리시다. 이번 폭발이 이스라엘 쪽 수송관에서 발생했는지 요르단 쪽 수송관에서 발생했는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폭발이 발생하면 두 나라를 향한 가스 수송은 자동으로 차단된다. 이 수송관은 작년 7월에도 테러공격으로 폭발한 전례가 있다.이 수송관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공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 정부는 자국 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2005년에 15년간 매년 17억 m³의 천연가스를 이스라엘에 판매하기로 합의했고 2008년부터 실행에 옮겼다.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집트 여론은 크게 반발했다. 특히 이집트 정부가 시세보다 40% 이상 낮은 가격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면서 반발 여론은 더욱 거셌다.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956년부터 1973년까지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현실적 온건주의를 표방한 무함마드 안와르 사다트 정권은 1978년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고, 1980년 국교를 수립했다. 이로 인해 이집트는 아랍연맹에서 제명당했고 사다트 대통령은 1981년 암살당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평화공존 정책을 계속 유지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차기 이집트 정부가 어떤 성격을 띨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기정사실로 여기면서 대(對)아랍 정책의 새판 짜기에 돌입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백악관을 비롯해 국방부와 국무부, 중앙정보국(CIA) 등이 총동원돼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별로 미국의 국익과 중동질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워싱턴 전역의 많은 빌딩에서 총체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이집트 반정부 세력의 이념적 종교적 정체성을 종합해보면 이번 시위사태가 친미 성향의 무바라크 대통령을 겨냥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차기 이집트 정부가 노골적인 반미(反美) 성향을 보이며 중동정책을 근저부터 뒤바꿀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포스트 무바라크 권력’을 놓고 각축을 벌일 것으로 유력시되는 3개 세력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75)을 내세운 군부세력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69)을 구심점으로 한 반정부 시위 주도세력 △이슬람 원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무슬림형제단 등이다. 이 중 술레이만 부통령을 내세운 군부세력의 재집권은 미국과 무바라크 대통령이 선호하는 카드다. 이집트의 친미 노선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위대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심복인 술레이만 부통령의 퇴진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술레이만 부통령 카드가 통하지 않을 경우 군부가 사미 아난 참모총장(63)을 대안인물로 내세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아난 참모총장은 청렴한 이미지로 대중적 지지도가 높을뿐더러 미국과의 관계도 매우 좋은 편이다.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이 집권할 경우에도 이집트의 대미, 대중동 정책은 상당 부분 승계될 것으로 보인다. IAEA 사무총장 재직 시 반미 성향을 보였던 그는 2일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차기 이집트 정권이 반미 정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할 경우엔 대내외 정책이 근본부터 바뀔 수도 있지만 역학구도상 이들이 단독 집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함마드 바디에 최고지도자(68)가 이끌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불법단체로 공식 활동이 금지된 속에서도 강력한 조직력으로 이집트 최대 야권세력으로 부상했다. 2005년에는 조직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체 의회 의석의 20%를 차지했다. 비록 알카에다와 같은 급진 원리주의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들의 집권은 군부와 미국에는 최악의 결과다. 하지만 이 조직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20∼40%에 불과해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있으며 군부의 배척과 서방사회의 강한 견제도 장벽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내각 해산을 천명한 지 이틀 만인 31일 새 내각을 발표했지만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는 1일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고 카이로에서 ‘100만인 행진’을 벌이겠다고 밝혔다.시위가 7일째 확산일로인 가운데 군부와 내각이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사임을 권고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그의 30년 권좌가 백척간두로 내몰리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 인터넷판은 지난달 30일 이집트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권력 이양이 불가피하다고 권고했다. 그가 ‘점잖게’ 물러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29일 임명한 최측근이다.하지만 현지 언론인은 31일 내무부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앞으로 3일 이내에 시위를 완전히 진압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동아일보에 전했다. 진압이 이뤄질 경우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야권의 행보도 숨 가쁘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집권당인 국민민주당을 배제한 거국정부 구성 논의를 시작했다. 엘바라데이 전 사무총장은 30일 1만여 명의 시위대가 집결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우리는 이 정권이 퇴진해 새로운 이집트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길 원한다”고 연설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타흐리르 광장에 31일 오후 5시(한국 시간 1일 0시) 현재 15만 명이 모였다고 전했다.국제사회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최근 개각은 시발점에 불과하다”며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방식으로 민주체제로 전환(transition)하는 것이 이집트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과도정부가 9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까지 국가를 잘 이끌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31일 보도했다.최근 일주일간 이어진 시위로 시민과 경찰 등 120∼150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카이로=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미국에 마약을 반입하려는 멕시코 마약갱단의 수법이 날로 다양해지는 가운데 급기야 중세시대에 사용됐던 방식의 투석기를 이용해 국경 너머로 마약을 날려 보내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멕시코 국방부는 29일 “전날 보안군이 미국 애리조나 주 더글러스 남쪽의 멕시코 국경도시인 아과프리에타의 한 거리에서 투석기와 비슷한 장치가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보안군은 21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높이 3.5m의 금속 투석기를 찾아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버려진 투석기 주변에선 소량의 마리화나도 발견됐다. 이번 주 미국 언론들은 멕시코 갱단 소속원들이 국경에서 투석기를 이용해 마약 꾸러미를 미국 쪽으로 쏘아 보내는 장면이 포착된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동안 특수 개조차량, 무선 조종 비행기, 지하 땅굴 등 다양한 마약밀매 방법이 당국에 적발됐으나 투석기를 이용한 마약반출 수법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 24일 자살 폭탄테러를 자행한 범인의 신원이 확인됐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29일 “사망자 35명과 부상자 180여 명을 낸 국제공항 자폭테러 공격의 범인은 북(北)캅카스 지역 자치공화국 출신의 20세 남성으로 확인됐다. 현재 테러 기획자들과 공범을 색출해 검거하는 작전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확한 신원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테러범이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2014년 겨울올림픽 등을 앞두고 외국인들을 두렵게 하기 위해 국제선 입국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연방수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1일 모스크바 동남쪽 외곽의 한 여관에서 발생한 폭발사건은 또 다른 북캅카스 테러조직의 소행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체첸, 다게스탄 등 7개의 이슬람권 자치공화국이 있는 러시아 남부 북캅카스 지역에서는 체첸 반군을 중심으로 격렬한 분리 독립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가난과 부자(父子) 세습에 반대해 국민들이 거리로 떨쳐나선 이집트에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은 내각을 해산하고 개혁을 약속했지만 국민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퇴진을 요구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21세기 초반 독립국가연합(CIS)에서 일어났던 장미혁명(조지아), 오렌지혁명(우크라이나), 튤립혁명(키르기스스탄)에 이어 민주화의 무풍지대였던 중동에서도 드디어 반독재 시민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이러한 시민혁명이 가장 필요한 곳은 다름 아닌 북한일 것이다. 재난과 전쟁 상황도 아닌 평시에 인구의 몇 %가 굶어죽은 지독한 가난, 비(非)왕조 국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실화한 3대 세습, 돈으로 사형수도 석방시키는 부패. 이런 것을 감안하면 북한은 혁명이 벌써 몇 번 일어났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스민혁명’의 향기가 북한에도 날아갈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CIS나 튀니지 이집트에 없는 잔혹함이 이미 북한을 꽁꽁 언 동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민주화혁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연좌제이다. 연좌제는 ‘역적죄인’의 가문을 멸족시키는 중세 봉건의 악랄한 유물로 지금은 지구상에서 북한에만 유일하게 존재한다. 북한은 반체제 행동은 물론이고 체제에 불만만 표시해도 몇 촌 이내의 친척까지 정치범수용소에 끌고 가 죽게 만든다.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연좌제부터 없애야 한다. 만약 튀니지와 이집트처럼 주민들이 거리에 떨쳐나서 시위하면 어떻게 될까. 몇 분 뒤 시위대는 한 명도 남김없이 사살될 것이며 하루 만에 6촌 이내의 친척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것이다. 보안원(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똑같이 처벌된다. 여기에 철저한 폐쇄정책 때문에 외부에선 북한 내부의 일을 전혀 알 수 없다. 1998년 8월의 송림제철 시위가 대표적이다. 당시 북한은 노동자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다 못해 철을 중국에 팔아 식량을 마련하려던 제철소 간부들을 즉결처형하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인근 탱크부대를 내몰아 무자비하게 깔아 죽였다. 이 사건은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현장의 사진도 없다. 외부와 연결된 인터넷도 없고 언론도 당국의 철저한 통제를 받다 보니 북한 주민들도 해외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다. 북한 사람들에겐 위키리크스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촉발시킨 북아프리카의 시위는 다른 행성의 일일 뿐이다. 아니, 시위가 일어났단 사실조차 알 길이 막혀 있다. 북한 당국은 현재까진 이집트 사태를 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쯤 노동당 선전부에선 “미국에 굴종하는 괴뢰정권에 분노해 이집트와 튀니지 인민들이 떨쳐 일어났다”며 “거스를 수 없는 반미 자주화 흐름 앞에 미제는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준비해놓았을 것이다. 꽃은 얼음 위에선 필 수가 없다.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우리나라만 ‘북극 추위’에 시달리는 게 아니다. 올겨울 미국과 유럽 등 북반구 곳곳이 이례적인 폭설과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과 이달 초 60cm 이상의 폭설이 미국 동북부를 강타해 뉴욕을 포함한 여러 대도시의 기능을 마비시킨 데 이어 24일에는 체감온도 영하 50도에 육박하는 한파가 다시 덮쳐 휴교령까지 내려졌다. 유럽도 한파와 폭설로 동사자가 속출하고 항공대란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의 기상학자들은 갑자기 닥친 한파의 원인, 지구환경 문제와의 연관성을 밝혀내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추운 미국, 더운 그린란드 미국 기상청은 24일 동북부 뉴잉글랜드에서 체감온도가 영하 50도에 육박했다며 한파주의보를 내렸다.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 펜실베이니아 뉴욕 코네티컷 주 등은 최저기온이 영하 30도를 밑돌고 있다. 이 지역 일부 학교는 휴교령을 내렸으며 일부에선 철도 운행까지 중단했다. 미국 동북부는 지난해 말 폭설이 덮친 이후부터 기온이 올라갈 줄 모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폭설 10개 중 2개가 지난해에 기록됐다고 전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지난해 말부터 수시로 내리는 기록적 폭설과 이상 한파로 교통대란에 시달리고 있으며 동사자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도 한파와 폭설로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반면 눈이 내리지 않아 울상을 짓는 곳도 있다. 이례적으로 폭설이 내린 미국 동남부 애틀랜타에서 북쪽으로 3200km 떨어진 캐나다 북부 누나부트 주 이칼루이트 주민들은 새해맞이 스노모빌 축제를 열지 못하고 있다. 데이비드 엘 부지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미국과 유럽을 바라보며 ‘우리 눈이 다 저기로 갔다’고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동북부와 그린란드의 지난해 12월 기온은 평년보다 최대 11.1도나 높았다. 한파와 폭설로 지구촌 곳곳에 비상이 걸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구의 평균온도는 지난해 기상관측 이래 최고로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찬 공기 묶어두는 ‘제트기류’ 많은 기상학자는 북극해의 해빙이 부른 시베리아의 강설량 증가를 올 기상이변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 수증기 증발이 활발해져 시베리아에 가을부터 많은 눈이 내리게 됐다는 것. 눈은 햇빛을 반사해 북극 대기의 찬 공기 소용돌이를 약화시킨다. 약화된 찬 공기 소용돌이는 다시 북극 주변에서 형성돼 지구 북반구 상공을 흐르는 제트기류 세력을 약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제트기류는 차가운 북극의 공기를 북극 상공에 묶어두는 일종의 ‘담장’ 역할을 하는데 이 기류가 약해지면 북극의 찬 공기는 담장을 넘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게 된다. 이 과정에 대기가 교란되면서 북극 대기 온도가 높아지고 이는 다시 북극의 얼음이 빨리 녹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찬 공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면 태평양의 수면온도도 영향을 받는다. 지난해에는 동태평양의 수면온도가 평소보다 0.5도 이상 낮은 상태가 5개월 이상 지속되는 라니냐 현상이 심화됐다. 라니냐 현상은 최근 호주와 필리핀, 브라질 등 지구 남반구에서 수천 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홍수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일부 과학자는 지구 북반구의 이상 한파와 폭설, 남반구의 홍수를 환경 파괴에 따른 지구온난화와 연관시키고 있지만 아직 이를 입증할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반론도 거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아프리카에 ‘남수단공화국’ 탄생이 임박했다. 기존의 수단공화국에서 분리될 남수단공화국의 건국은 19세기 유럽 열강에 의한 식민잔재의 청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 종식 등 여러 함의를 지니고 있다.○ 주민 98%가 독립 찬성9∼15일 남수단 유권자 393만2588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 무려 98%가 독립에 찬성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공식 투표결과는 다음 달 14일 발표 예정이다. 신생 독립국 앞에는 국호, 국기, 국가(國歌) 등을 정하는 기초적인 일부터 시작해 북부 수단과의 분쟁지역 정리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난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뉴욕타임스는 24일 남부 수단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국가창설준비위원회가 지난주에 신생 독립국가명을 ‘남수단공화국(The Republic of South Sudan)’으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아직 공식화된 것은 아니지만 12개 이상의 국명 후보를 놓고 고민 중인 준비위의 대다수 위원이 ‘남수단공화국’이라는 이름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벤저민 마리얼 준비위원은 “남한, 북한 같은 이름이 존재하는 만큼 수단도 북수단과 남수단으로 했으면 한다”며 “친밀하고 부르기 편하다는 점에서도 좋다”고 설명했다. 남수단공화국이 다음 달 독립을 선언하고, 유엔에 가입하면 유엔의 193번째 회원국이 된다.하지만 더 힘든 일은 헌법을 제정하고 법률을 새로 만드는 등 국가의 골격을 갖추는 작업이다. 여기에 남북 수단의 국가 채무와 원유 판매수입 배분, 국경지역인 아비에이 유전지역 관할권 분쟁 등 미묘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이하로 추정되는 남수단의 빈곤한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키는가 하는 것도 또 다른 과제다. 남수단 정부는 케냐를 가로질러 인도양으로 향하는 송유관을 새로 건설할 예정이다. 남수단은 60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는 산유국이지만 현재 송유관은 북부지역에만 있다.○ 수백만 명의 피로 청산한 식민 잔재원래 북수단과 남수단은 한 국가라고 하기엔 인종적, 종교적, 지리적으로 차이가 컸다. 북부는 역사적으로 이집트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슬람을 믿는 아랍계가 많이 살고 있다. 반면에 남부는 케냐, 우간다와 가깝고 기독교와 민속신앙을 믿는 아프리카 본토 흑인이 많다. 언어도 북부에선 아랍어를, 남부에선 영어를 주로 사용한다. 자연환경도 사막이 펼쳐진 북쪽과 달리 남부는 숲과 늪지대가 많다. 20세기 수단의 유혈참극은 19세기 말 영국의 식민통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은 식민 지배 초기 남북을 분리 통치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두 지역을 하나로 묶어버렸다. 1956년 수단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독립을 인정해줬다. 하지만 이슬람계가 지배하는 북부 중앙정부는 기독교계의 남부 지역 주민들을 2등 국민으로 취급했고 개발에서 철저히 소외시켰다. 심지어 남부에 대한 극단적 이슬람화를 추진해 1955∼1972년, 1983∼2005년에는 중앙정부군과 남부 반군 사이에 두 차례의 내전이 벌어져 25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남수단 독립은 북수단의 이웃 나라인 에리트레아가 오랜 내전 끝에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한 과정과 유사하다.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에 제멋대로 그어 놓은 국경선이 자연스럽게 재조정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북부 수단의 또 다른 기독교 우세지역인 다르푸르에선 2003년부터 지금까지 약 20만 명이 학살되고 200만 명이 피난길에 오르는 등 수단의 식민잔재 청산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남수단의 독립은 이라크 예멘 레바논 이집트와 같이 인종 및 종교 갈등을 겪는 아랍 국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구상의 마지막 ‘민주화 무풍지대’로 남아있던 아랍 독재국들이 튀니지발 ‘재스민 혁명’으로 당황하고 있다. 아랍권의 위기의식은 19일 이집트에서 열린 아랍정상회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회의 주제는 당초 무역과 투자 증진 방안 모색이었지만 튀니지 사태로 ‘빈곤 퇴치’로 옮겨갔다. 아랍국들은 튀니지 시민혁명의 촉매가 된 실업과 고물가를 완화하기 위해 2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서방세계를 향해서는 “(아랍국들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움직임에 경고를 보낸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 수단 요르단 5개국을 다음 혁명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튀니지와 인접한 알제리는 1999년부터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73)이 집권 중이다. 최근 그의 건강이상설이 나온 데다 반정부 시위도 어느 나라보다 거세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82)이 30년째 집권 중인 이집트도 대표적인 장기독재국가. 무바라크 대통령도 최근 건강이 악화돼 향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69)가 42년이나 통치하고 있는 리비아의 경우 아들에게 권력이양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튜브 등에 따르면 일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통제가 심해 외부 언론에 시위 소식이 알려진 적은 없다. 20년째 권좌에 있는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67)은 최근 남부 수단 분리 국민투표로 정치적 위협은 일단 비켜간 상태. 독재가 워낙 굳건해 당분간 혁명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요르단도 최근 실업률과 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거세지만 시위대가 국왕을 비난하지는 않고 있다. 아랍국들에서 당장 ‘시민혁명 도미노’가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튀니지는 많이 서구화된 국가여서 정부 통제가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엔 정권이 군을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 산유국은 불만이 커지면 돈을 풀거나 감세안을 내놓아 민심을 진정시킬 대책들이 있고 왕족들이 지배하는 국가에는 왕에게 순종하는 문화가 워낙 강한 것도 걸림돌이다. 튀니지혁명은 미국에는 새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는 게 포린폴리시의 분석이다.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도덕적 십자군주의’에서 탈피해 외교 다변화를 꾀하며 ‘실용주의적 외교’를 펴 온 버락 오바마 정부가 아랍의 친미독재국가(사우디 이집트 알제리 바레인 등)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운동가들이 투옥되는 경우 이를 눈감아주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병가에 들어간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를 대신해 애플을 이끌게 된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COO·사진)가 새 역할을 맡은 지 며칠도 안 돼 독설부터 쏟아내 눈길을 끌고 있다. 쿡 COO는 18일 실적 발표 자리에서 경쟁사 제품을 향해 ‘기괴하고’ ‘무겁고’ ‘증기(蒸氣)와 같은 것’ 등의 표현을 써 가며 강한 어조로 공격했다. 이는 독설로 유명한 잡스 CEO 못지않은 상당한 수위의 발언이다. 쿡 COO는 최근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라스베이거스 ‘CES 2011’에 선보인 태블릿PC들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는 아이패드의 경쟁 제품을 세 가지로 분류해 각각의 단점을 혹평했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운영체제(OS)를 쓰는 태블릿PC에 대해 “너무 크고 무겁고 비싸며 배터리 수명도 길지 않을 뿐 아니라 전용 펜까지 있어야 한다”면서 “우리가 보기엔 솔직히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으로 안드로이드 태블릿PC에 대해선 “OS가 사실 태블릿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 아니다. 이는 구글도 인정한 것이다. 단순히 애플만 이런 생각을 가진 게 아니다”라며 “기본적으로 이는 크기만 키운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시각으로는 기괴한 제품”이라고 주장했다. 구글의 새 OS인 안드로이드 3.0에 대해선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아 실체를 알 수 없는 증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아이패드는 어느 누구와의 싸움에도 기꺼이 응할 수 있으며 대다수는 아이패드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쿡 COO의 발언은 “7인치 태블릿은 사망” “안드로이드 유저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등의 독설을 퍼붓던 잡스 CEO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일각에선 기자회견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쿡 COO가 후계자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언 수위를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시장에서는 쿡 COO의 혹평에 대해 애플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삼성전자 제품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갤럭시탭을 내놓았으며 차기 태블릿PC엔 윈도7 운영체제를 탑재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19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도 국무장관직을 계속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클린턴 장관은 NBC방송의 ‘투데이 쇼’에 출연해 오바마 2기 정부에서도 국무장관을 맡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현재 이 자리에서 일하는 것에 매우 만족하지만 이전부터 여러 번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개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 왔다”고 대답했다. 국무장관은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머물 의사는 있느냐는 질문에는 “어떤 방식으로도 약속할 수 없고 심지어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고 답변했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해 PBS방송에 출연했을 때도 8년 동안 국무장관 자리에 있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단언했고 대통령선거에도 다시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생계수단을 빼앗긴 한 20대 청년의 분신 항거가 23년여 독재를 끝냈다.지난해 12월 17일 아프리카 튀니지의 중부 소도시 시디부지드.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얻지 못해 무허가로 과일 노점상을 하던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 씨(26)가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졸지에 과일과 좌판을 모두 빼앗긴 부아지지 씨는 시청으로 갔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불가피했다며 선처를 부탁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청사 앞 도로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그의 분신은 만성적인 실업과 고물가, 독재에 시달려온 시민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이달 5일 부아지지 씨가 끝내 숨을 거두자 시위가 중부 도시들로 확산됐다. 카스라인에선 시위대 수십 명이 사망했다. 11일 급기야 수도 튀니스로 시위가 번졌다. 통행금지 조처가 내려지고 군 병력이 배치됐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8명이 사망했지만 “대통령은 물러나라”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당황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은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한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을 경질하고 2014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4일에는 내각 해산 및 6개월 내 조기 총선 실시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날 밤 그는 가족과 함께 몰래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사우디아라비아. 23년여 동안 철권을 휘둘렀던 독재자는 그렇게 떠났다.프랑스에서 독립한 이래 31년 동안 튀니지를 통치해 온 하비브 부르키바 종신대통령을 1987년 무혈쿠데타로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했던 벤 알리 대통령은 원래 직업 군인이었다. 국가안보장관과 총리(1987년)를 거쳐 권좌에 오른 뒤 대통령 연임을 2회로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약속해 국민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군대를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정치범 수백 명을 투옥했다. 연이은 개헌을 통해 임기를 늘리며 2009년에는 5선에 성공했다. 그의 축출에는 대통령 일가의 부패상을 기록한 미국 외교관들의 전문을 공개한 위키리크스의 공도 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08년 6월 튀니지 주재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2급 비밀 전문에는 “벤 알리 대통령 일가는 돈, 서비스, 토지, 자산에다가 요트까지 탐내며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적혀 있다. 2009년 7월 작성된 또 다른 전문에서는 로버트 고덱 튀니지 주재 대사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벤 알리 대통령의 사위 무함마드 사헤르 엘마테리가 집에 온갖 고대 유물과 최고급 음식, 심지어 애완용 호랑이까지 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해 폭로한 이들 전문은 튀니지 민주화 운동가들이 만든 ‘튀니리크스’에 게시됐으며, 당국의 검열에도 인터넷을 타고 현지 누리꾼 사이에 급속도로 퍼졌다. 15일 헌법에 따라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푸아드 메바자 국회의장은 TV 연설에서 “모든 튀니지인은 예외 없이 국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선서 직후 그는 무함마드 간누치 총리에게 “국가의 가장 큰 이익을 위해 통합정부가 필요하다”며 연립정부를 구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간누치 총리가 주요 야당 인사들과 만나 통합정부 구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튀니지는 헌법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45∼60일 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16일부터 사태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서 정부는 폐쇄했던 영공을 재개방하고 공항 운영을 정상화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대에게 총을 발사하는 등 사회불안을 고조시킨 혐의로 벤 알리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체포했다.국제사회는 환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튀니지 국민의 용기를 치하한다”며 공정한 선거를 기대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인권과 언론의 자유, 의회가 함께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전 식민통치국 프랑스도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고 했다. 누리꾼들은 튀니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꽃의 이름을 따 ‘재스민 혁명’이라고 칭했다. 영국으로 망명했던 튀니지이슬람당 지도자 라셰드 가누시 씨는 “조만간 귀국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튀니스 중앙역이 방화로 불길에 휩싸이고 시내 명품 가게들과 호화주택들이 약탈되거나 불에 탔다. 특히 벤 알리 대통령 일가 소유의 건물들과 사업체들이 방화의 목표가 되고 있다. 2006년 한 프랑스 기업인으로부터 요트를 빼앗은 것으로 알려진 벤 알리 대통령 전처의 조카 이메드 크라벨시 씨는 해외로 탈출하려다 비행장에서 분노한 군중에게 맞아 16일 숨졌다. 취재 중에 최루탄에 맞아 치료를 받아오던 프랑스계 독일인 사진기자도 이날 숨졌다. 동부의 휴양도시 무나스티르의 교도소에서는 탈옥을 노린 방화와 교도관의 총격으로 42명이 숨졌다. 영국과 독일 여행사들은 관광객 수천 명을 본국으로 수송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또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나는 튀니지의 아들들이 매일 죽어가는 사태가 걱정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튀니지 주변 국가들은 ‘시위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한편 한국 외교통상부는 “현재까지 30∼40명이 튀니지를 빠져나갔다”며 “비상상황 때 전세기를 이용해 100여 명의 남은 교민들을 탈출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주튀니지 한국대사관은 시위가 절정에 이르렀던 15일 저녁 한국 교민 44명이 약탈을 피해 대사관에서 밤을 새운 뒤 16일 오전 귀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외교부는 튀니지 전역을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 지역으로 지정했다.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