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리비아]리비아 ‘잔혹진압’ 체제붕괴 자충수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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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사격에 수류탄-박격포까지… 軍 일부도 등돌려

반정부 시위에 대한 리비아 정부의 강경 유혈진압이 전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다. 리비아 당국은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마자 군을 동원해 무자비한 사살로 대응하고 나섰다. 보안군은 시위대에 조준사격을 가하고 박격포와 수류탄 발사기까지 동원했다. 군이 시위 기간 내내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한 이웃 튀니지와 이집트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그 같은 무자비한 진압이 국민의 분노를 촉발하면서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 규모는 눈덩이처럼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군 일부도 ‘형제’를 도살하는 정권의 잔인함에 등을 돌려 시위대 편에 섰고, 고위 외교관들도 잇따라 사임하는 등 유혈 진압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42년 철권통치를 뿌리부터 흔드는 자충수가 되는 양상이다.

리비아군이 시위대에 발포를 한 것은 시위 발발 다음 날인 16일부터였다. 보안군과 혁명위원회 소속 민병대가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청년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했다. 18일엔 최정예 부대로 꼽히는 카미스여단과 외국 용병부대가 주요 도시에 배치되면서 더욱 잔인한 진압이 이뤄졌다.미국 뉴욕 소재 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HRW)는 20일 숨진 60여 명까지 포함하면 리비아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233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처럼 카다피 정권이 시위 초기부터 유혈 진압으로 대처한 이유는 폐쇄된 정치 시스템과 최근 이웃 국가들을 보며 배운 것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카다피는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를 융합한 독특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하고 폭압적 시스템을 오랫동안 다져왔다. 리비아 주재 영국대사를 지낸 리처드 달턴 경은 “리비아 체제의 태도는 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이라며 “카다피가 양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유혈진압 소식이 외부에 새나갈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리비아는 현재 인터넷과 휴대전화 사용이 중단되고 외신기자들의 입국도 차단됐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 끝내 체제 전복으로 이어진 튀니지 이집트의 사례가 처음부터 무자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혈 진압이 국민의 공분과 시위대의 강경 대응을 유도해 리비아 시위사태는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내전이 예고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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