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창중]폴리페서의 일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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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칼럼세상 대표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
인터넷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을 토닥토닥 두드려 보니 그가 지난해 10월 21일 단 하루 동안 트위터에 올린 무려 35건의 글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새까맣게 붙어 있는 포도송이처럼. 서울시장 재선에서 박원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투표를 독려하는 글들. 대학수업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시점에서 하루에 35건의 글을 트위터에 올린다?

하루동안 트위터에 35건의 글

하루 24시간 중 깨어 있는 17∼18시간 동안 어림잡아 한 시간에 두 건씩 글을 올렸다는 얘기다. 트위터에 목매다시피하며 정치에 개입하는 조국! 언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시간이? 이러고도 과연 교수 본래의 책임에는 투철하다고 억지를 부릴 수 있는가?

‘조국의 일탈’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대선일이 다가오자 더욱 노골적인 ‘정치 책사’로 나서고 있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 나타난 조국,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하면) 당연히 그 캠프에 갈 것이고, 시쳇말로 이름 팔고 얼굴 팔라고 그러면 얼굴 팔겠다.” 얼굴 팔겠다? 이게 지성(知性)의 타락이 아니라면 뭘 두고 타락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문재인·안철수가 공동으로 전국을 돌며 ‘문·안드림 콘서트’를 하다가 단일화하라고 제안했다가 뜨악한 반응이 나오자 보다 구체적으로 ①양측의 정치혁신위원회 구성→②혁신 방안 논의→③공동 정강정책 확립→④세력관계 조율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심지어 문·안이 함께 부산 사직구장에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팀의 경기를 보러 가면 자신은 ‘말춤’을 추겠다고까지.

조국뿐만 아니다. 지금 폴리페서들의 정치권력을 향한 탐욕은 가히 장관(壯觀)을 이루고 있다. 여의도에 밝은 정치소식통들에 따르면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캠프에 공개적으로 이름 걸어놓은 폴리페서는 600명이 훨씬 넘었고 이름 감추고 밤이슬 맞으며 몰래몰래 대선캠프에서 도우미하는 교수까지 합하면 대충 1000명에 육박한다는 계산도 있다. 한 대에 50명씩 타는 관광버스를 20대는 준비해야 이 폴리페서들이 모두 탈 수 있다. ‘폴리페서들의 창궐’이다!

대한민국 폴리페서들은 기회만 생기면 시민단체에 이름 올려 영향력을 과시하고, 대선캠프에서 부르기만 하면 수업 팽개치고 쫓아가는 현실! 지금 대학가에서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연구실에서 밤새우는 성실한 교수들을 무능하다고 보는 풍토! 교수로서의 직업의식부터 결여돼 있고, 정치권력에 대해 최소한 유지해야 할 덕목이나 절개도 없고,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에 대한 도리도 없다.

학자로서 일생을 마치기보다는 꼭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고, 무슨 벼슬을 하며 우쭐거리고 싶은 허위의식이 지성계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폴리페서로 타락하는 것. 심지어 대학총장들까지!

언제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칠지

전두환 정권에 의해 고려대 총장에서 물러난 김준엽 선생, 그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평생에 걸쳐 모든 정치권력으로부터 요직을 제의 받아왔으나 모두 거절했다. 김 전 총장은 새로 대통령이 된 노태우 당선자로부터 국무총리직을 제의받자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굽실굽실하는 풍토를 고쳐야 한다. 족보에 남기 위해 덮어놓고 벼슬자리에 앉는 그런 풍조를 시정해야 한다.” 얼마나 멋진 지성의 절개인가!

대학가에 폴리페서가 넘쳐나는 현실이니 노벨상은 너무 먼 꿈이 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지성의 타락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던져준다.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고 있는 현행 정당법을 뜯어고쳐 폴리페서들의 창궐을 다음 대선 때부터는 원천적으로 봉쇄하라! 현실 권력을 향한 폴리페서들의 무한정한 ‘탐욕 레이스’에 제동을 걸어야 타락한 지성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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