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민노총이 반대하면 총리 못한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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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본다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으면 일갈했을 거다. 민노총이 반대해서 총리 지명을 못 받는다는 김진표 의원 얘기다.

나는 김진표와 일면식도 없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니 돌연, 그렇다면 총리감 아닌가 싶어진다.

조국 때는 반대여론이 우세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던 대통령이다. 민노총과 함께 반대의 쌍지팡이를 짚고 나선 참여연대와 경실련은 고위공직자 배출창구로서 한마디 했다고 쳐주자. 대체 민노총이 뭔데 대통령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건가. 정녕 노동자가 주인 되는 ‘노동자 세상’이 온 것인가.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친기업·반노동적 김진표 안 된다”

민노총의 반대 이유는 한마디로 친(親)기업·반(反)노동적이라는 거다. 하지만 민노총 성명을 보면 김진표가 노무현 정부 때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서 꽤 옳은 소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외국자본 투자 기피도 대기업노조 탓으로 돌리며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니, 김진표 틀린 것 없다.

실제로 2007년 방한한 피터 로랑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총장은 “적대적이고 과격한 노사문제가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IMD는 정부행정, 기업효율 등을 따져 국제경쟁력 순위를 발표한다. 2002년 29위였던 우리나라는 2003년 37위, 2007년엔 38위로 떨어졌다(올해 경쟁력이 궁금하신가. 28위다. 작년보다 한 계단 하락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노총의 비정규직 입법 저지 총파업은 시대착오적인 잘못”이라고 할 만큼 민노총의 문제를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진표는 말로만 큰소리뿐, 대기업노조 중심의 민노총을 손보지 못했다. 그 결과가 지금 국민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민노총이다.

● 민노총은 촛불시위 이끌지 못했다

민노총은 자기네가 개국공신인 양 당당히 지분을 요구한다. 국회 앞 폭력시위로 위원장이 구속된 6월에도 “민노총이 촛불항쟁의 힘으로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며 수틀리면 이 정부를 끌어내릴 듯이 협박했다. 곧 위원장은 석방됐고 민노총은 재미가 난 듯하다.

올해 6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노동탄압 규탄과 민주노총 대응투쟁 계획 발표 기자회견’ 현장.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올해 6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노동탄압 규탄과 민주노총 대응투쟁 계획 발표 기자회견’ 현장.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착각하지 마시라. 지난 정부 말기 민노총을 비롯한 온갖 좌파 운동조직이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라는 연대기구를 만들어 촛불시위 지도부를 자임한 건 사실이되, 이들이 시위 자체를 기획하고 대중을 이끌었다고 하긴 어렵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1987년 6월항쟁과 2016년 촛불항쟁 비교’ 연구보고서에서 분명히 밝힌 내용이다.

“2016년 촛불항쟁은 1987년의 6월항쟁보다도 더 대중들의 자발적 동원에 의존한 정도가 컸다. 퇴진행동은 자발적 참여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에 머물렀다 (중략) 민노총보다는 청소년 혹은 ‘혼참러’가 더 주목받았다.”

● 민노총에 휘둘려 세계적 방향과 역행

말끝마다 촛불혁명, 촛불정부를 부르짖는 문재인 정부는 말이 씨가 됐음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은 민노총에 빚진 게 없다. 문 대통령은 41.09%의 득표율로 당선됐지, 전체 노동자 4%에 불과한 민노총에 업혀 집권하지 않았다.

취임하자마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임금피크제 폐지 같은 민노총 요구에 맞추면서 문재인 정부는 마침내 ‘성장률 1%대’라는,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로 들어설 조짐이다. 대통령은 뻑 하면 “방향은 맞는데 성과가 안 나온다”고 말하지만, 방향이 틀려서 성과가 안 나오는 것임을 국민은 다 안다(민노총과 문빠 빼고).

현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프랑스의 에마뉴엘 마크롱 정부를 보라. 그는 ‘유럽의 병자’로 전락한 프랑스를 살리기 위해 전후(戰後) 유산처럼 남아있던 ‘사회적 파트너’ 노조의 족쇄에서 벗어나기를 첫 개혁과제로 삼았다. 출범 4개월 만인 2017년 9월 노동시장개혁법을 ‘법률명령’으로 추진했고, 벌써 고용 확대가 성과로 나타난다는 외신 보도다.

물론 작년 말 ‘노란 조끼’ 시위에 이어 지금도 연금개혁을 놓고 시위가 벌어진 상태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면 ‘제도’는 달라져야 한다. 뒤처지는 이들을 위한 제도 또한 필요하다. 프랑스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정확하게 반대로 가는 형국이다. 민노총 요구대로.

● ‘아시아 네 호랑이’ 중 꼴찌로 죽을 건가

‘타다 제한법’이 지난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할 말을 잃었다”. 4차 산업혁명적 잠재력을 지닌 혁신기업이 민노총이라는 막강한 ‘빽’을 믿는 택시 기득권에, 이들에게 기댄 집권세력과 쫄보 야당에 여지없이 밀린 것이다.

‘타다 제한법’이 통과되자 이재웅 쏘카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이미지. 페이스북 캡처.
‘타다 제한법’이 통과되자 이재웅 쏘카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이미지. 페이스북 캡처.

마침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도 “한국은 엄청난 규제의 벽으로 서비스산업과 네트워크산업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로 불렸던 싱가포르, 홍콩, 대만, 한국의 오늘을 분석한 특집에서 한국은 완전 꼴찌다(구매력지수 기준 국민소득). 그것도 정부의 비효율적, 비생산적 조치 때문에.

김진표와 함께 총리 물망에 올라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김진표 같은 말’조차 하지 않는 강성 좌파 운동권 출신이다. 김현미 총리가 탄생하면 민노총이야 쌍수 들고 환영하겠지만 문 정부 후반기 변화의 가능성 같은 건 물 건너간다. 집값 때려잡기 정책이나 내놓아 일산 지역구 총선 승리도 자신 못할 김현미를 총리로 세워 성공한다면, 한강이 뒤집힐 일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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